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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전동혁 베드로 신부

변화는 하늘의 빛나는 별을 붙잡고 길을 떠나는 것이다!

 

 

잠들기 전, 내일은 기도로 아침을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는다.

그러나 일어나자마자 담배부터 입에 문다. 다시 밤이 찾아오면 운동해야겠다고 계획하고 잠든다.

그러나 일어나면 스타벅스에 가고 있다. 항상 다짐하는 바이지만, 오늘까지만 담배피고 내일부터는 끊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언제나 담배 물고 새아침을 맞이한다.

30년 넘도록 이를 반복하고 있다. 정말 지-겹다.

오늘 말씀의 메시지가 변모, 곧 변화에 대한 내용인데 지금껏 나는 아무런 변화 없이 살았다. 참 민망하다. 

 

그렇게 몸부림쳐 봐도 잘 바뀌지 않는 저 변화의 실체는 무엇일까?

답을 얻으려 길을 떠났던 오이디푸스 왕처럼 잠시 집을 나서보도록 하자.

아브라함은 말씀을 듣고 약속된 땅으로 떠났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그리 대단한 곳이 아니었다.

사실 우크라이나 땅이 더 비옥하다. 또 그곳은 밭 메는 아줌마도 김태희보다 더 예쁘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그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만약 아브라함이 그곳 여인을 만났더라면 아마 200년은 더 살았을지도 모른다.

기분 좋아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라고 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이 퍼즐을 맞추는 것이 믿음의 선조들이 풀어야할 숙제였다.

이는 그들의 전 생애를 통하여 맞춰지는데, 그에 따라 그들의 믿음도 깊이에 깊이를 더한다.

이것이 곧 회개다. 회개(μετάνοια:메타노이아)는 ‘μετά’(-후에)와 ‘νοια’(인식/생각/이해)가 합쳐진 단어다.

하여 ‘무엇을 인식/생각/이해한 후’라는 의미다.

예컨대 김태희보다 더 예쁜 우크라이나의 밭 메는 여인을 보고 난 후, 그 나라로  이민가야겠다고 결심한다면 그는 회개한 자가 된다.

곧 회개는 이전의 상태와 다르게 생각하고 지금을 다시 생각하고 내일의 방향을 새로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하여 변화는 진정한 회개를 동반하는 법이다.

그런데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회개가 왜 누구에게는 일어나고 다른 누구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그 자리를 넘어가느냐, 넘어가지 못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다는 슬퍼하고 후회하기만 했지, 변화되지는 않았다. 종이 한 장 차이지만 베드로는 유다와 달랐다.

그는 자신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요한 21장 참조) 대신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안고 주님을 따랐다.

바오로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분은 자신 안에서 분리된 두 자아(Ego)를 경험했다.

정말 고뇌에 찬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 자신 안에 살고 계신 그리스도를 붙잡는다.(갈라 2,19-20) 분명 전/후가 다르다.

이 달라짐은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초월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자리이지만, 사람들은 흔히 전자를 경험할 뿐이다.

후자, 곧 은총의 체험에로 나아가는 것은 드물다.

왜 그럴까? 은총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감추어져 있는 까닭이다.

은총을 체험하지 않고서 이 신비를 깨닫기란 매우 어렵다.

하여 천국을 볼 수 있는 안경과 십자가를 통과하는 열쇠, 또 은총을 구할 수 있는 보증수표가 변모산에서 주어졌던 것이다.  

 

덕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히브 11장 1절의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는 말씀과

16절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는 말씀에 힘입어,

저 약속된 땅이 바로 하늘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여 회개는 한계를 넘어가는 은총의 손길을 붙잡는 것이며 변화는 희망을 안고 자유에로의 길로 기쁘게 나서는 것이다.

이 손길을 붙잡고서, 나도 발버둥쳐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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