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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론 전병이 요아킴 신부

일상의 순교

 

윤봉문 요셉 성지는 수백여 종의 다양한 나무와 푸른 바다를 품고 있는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입니다. 특히 사시사철 곧게 뻗어 있는 편백나무와 대나무가 만들어놓은 작은 오솔길은 일상에서 벗어난 소박한 쉼을 주고, 순교자 탑 인근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지세포만의 풍광은 마음마저 넓고 푸르게 만들어줍니다. 이런 윤봉문 요셉 성지의 순례길은 하늘의 이치와 자연의 이치를 함께 묵상하기 좋은 곳입니다.

 

윤봉문 요셉 성지에서 일상의 순례자가 되어 순교적 삶이 무엇인지 묵상하다 보면 이런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때론 무거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순교 선조들처럼 서슬 퍼런 박해시대에 살았더라면 머뭇거림 없이 목숨 바쳐 신앙을 증거할 수 있었을까? 지금 당장 목숨 내놓고 실존을 다해 오롯이 신앙을 증거할 수 있을까? 자문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순교가 한순간의 결정적 선택만이 아니라 가꾸어진 삶을 통해 살아가는 것임을 묵상하다 보면 작은 희망은 품게 됩니다. 

우리 삶의 자리를 신앙을 드러내고 고백하는 증거의 장으로 만들어가다 보면, 일상의 삶에서 작은 것에서부터 신앙을 증거하려 노력하다 보면, 부족하지만 그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순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루카 9,23) 예수님 따르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충실히 살아가려 노력한다면 마침내 순교의 영광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렇듯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상의 순교’는 신앙적 삶의 충실함이 스며있고, 드러나는 일상을 가꾸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충실히 지켜왔던, 습관처럼 살아왔던 가꾸어진 신앙적 삶이, 그러한 환경이 자신을 지켜주고 순교를 살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충실한 기도 생활과 성사 생활, 그리고 애써 사랑을 실천하고 신앙을 증거하려는 삶을 통해 우리 각자의 일상을 가꾸어가다 보면, 이 일상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순교의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일상의 순교’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비록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결실이 없더라도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일상의 순례자가 되어 끊임없이 노력하고,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해 가면서 하나씩 쌓아가다 보면 마침내 순교적 삶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눈에 항상 제자리에, 출발선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이는 순교를 향해 가는 신앙의 여정도 하느님 보시기에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지도, 아니 목표지점을 눈앞에 둔 어느 작은 오솔길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교자들의 전구로.

 

 

크기도 넓이도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이 선들이 모여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듯 순교를 향한 우리 신앙의 여정도 그렇게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순교란 매일 일상의 삶에서, 순간순간의 조각들에서 시작되고 이것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승리와 은총의 월계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의 점을 찍듯 작은 오솔길을 걸으며 기도해 봅니다. 지나온 자국들이 모이고 모여 순교를 향해 가는 순례자의 길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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