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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3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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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거제
지역 1
성당명 북신동
전화 641-5450
팩스 646-2108
주소 53058 통영시 여황로 353
홈페이지 http://bsd.cathms.kr

1939북신.jpg

북신동성당이 태동할 당시 태평동성당은 신자 수 증가와 더불어 좁은 성당 공간, 회합실 부족 등 내부적인 이유 때문에 새로운 성당 건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당시 충무시(1995년 통영시로 개칭)는 수산업 등의 활기로 인해 외부 인구의 유입이 늘어났고, 그와 함께 북신만 매립지 조성, 죽림만 매립 등으로 새로운 아파트건립과 더불어 북신동지역에 또 하나의 새로운 신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었다. 그리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북신동 매립지나 죽림만 매립지의 신시가지 인근에 새로운 성당 건립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었다. 아울러 교구차원에서도 1990년 12월 교구설정25주년 기념사업으로 통영지역에 제3성전 부지마련을 위한 기금조성을 시작하였고, 따라서 통영지역에 새로운 성당의 건립 필요성과 당위성은 현실적으로 눈앞에 와 있었던 것이다. 태평동성당의 김용호 신부는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새성당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당시 김홍규(시메온) 정대모(바오로) 박정효(베드로) 등 본당 평협간부를 중심으로 북신동과 무전동 일대에 새로운 성당 건립 적정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자료조사와 부지 물색 작업을 위해 노심초사하였다. 그러던 중 한명조(라우렌시오)가 자기 소유의 땅을 교구에 봉헌함으로써 북신동성당의 기초를 놓게 되었다. 한명조(라우렌시오)가 부지를 기증하고, 그 땅이 새성전부지로 확정됨으로써 북신동지역의 새로운 성당 건립은 힘을 얻고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 동안 새성당부지 마련을 위해 전 신자들이 조금씩 기금으로 조성하였던 금액은 이제 새성전건립기금으로 전환하여 성전 건립에 한층 더 큰 힘을 얻게 되었다. 이어서 1991년 1월에는 먼저 대건성당에서 제3성전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4월에는 태평동성당에서도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새성전 건립을 위한 기금모금에 힘찬 발을 내딛게 되었다. 1992년 11월 성당 부지마련에 심혈을 기울였던 김용호 신부가 떠나고, 제16대 주임으로 조영희(아나니아)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리하여 1993년 6월부터 새성전건립 추진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여 새성전 건립에 따른 실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1993년 5월 창원시 소재 <환> 건축설계사무소와 신축 성당 설계계약을 체결하였고 1993년 6월 19일 건축허가를 득하였다. 9월 24일 마산시 산호동 소재 고려종합건설(주)과 시공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시공회사의 갑작스런 부도로 인하여 우여곡절 끝에 (주)익산건설과 재계약을 체결 후, 1993년 11월 2일 드디어 성당 착공을 하게 되었다. 공사 도중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많았다. 특히 토목공사 시작부터 성당 뒤편에 있는 옹벽공사를 하던 중 복병을 만나게 되는데, 단단한 청석으로 된 암반층이 형성되어 있어 파석하는 데 공기가 길어지는 등 공정의 어려움과 난공사의 고충을 겪게 되었다. 1993년 11월 착공 후 1년 3개월 만에 완공하여 1995년 2월 20일 박정일 주교의 주례로 성대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연면적 1,211.97㎡ 지상 3층 지하 1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 본당주보를 ‘예수 부활’로 정하였고, 관할구역은 통영시 북신동, 무전동, 용남면, 도산면, 광도면 지역과 법송공소를 맡게 되었다. 1995년 2월 초대 주임으로 이은진(도미니코) 신부가 임명되었는데, 설립당시의 신자 수는 475세대 1,223명이었고, 수계신자는 640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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