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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0 04:18

간이역

조회 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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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체 가톨릭문인회
저 자 이규준 바오로 ● 시인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301
발행일자 2018-04-15
우리는 삶을 영위하면서, 어깨의 짐이 너무 무거워 기력이 고갈되었거나 권태의 출구를 찾지 못할 때에는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난다. 나는 여러 방편의 여행 중에서 특히,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 기차 여행은 운전의 부담감이 없을 뿐 아니라, 실시간으로 창문 안으로 밀려오는 갖가지 풍광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덤으로 덧없이 흘러가버린 일상에 대한 성찰과 반성, 거기다 한 줄의 시상을 떠 올리게 하는 마음의 여유까지 제공해 준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도중에 수많은 역을 지나치게 된다. 출발지 역과 목적지 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간이역이다. 간이역은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이다. 결코 영원히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다. 허공에 떠도는 바람처럼 어느 누구든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이다. 우리의 삶 또한 유한하다. 이승이라는 간이역에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야 할 종착역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역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있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 자리에 변함없이 그대로 있을 것이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세상이라는 큰 역 안에는 수없이 많은 간이역들이 있다. 세상 밖에도 유형, 무형의 또 다른 역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디딘 발걸음 하나하나가 인생의 간이역인 셈이다. 삶의 간이역들을 연결하면 삶의 궤적이 되며, 삶의 궤적은 역사가 된다. 나는 그동안 짧지 않은 인생의 바다에 노를 저어오면서 크고 작은 간이역들을 거쳐 왔다. 지나온 간이역마다 누에가 씨줄과 날줄을 뿜어내어 고치를 짜듯 형형색색의 사건과 인연을 심어 놓았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연륜도 쌓이게 되었다. 앞으로도 마라톤의 결승 테이프를 끊을 때까지 끊임없이 발자국을 찍을 것이다. 과연 그동안 내가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남겨 놓았던 흔적들은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만의 잣대가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진정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여태껏 생활하면서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다 두고 살아왔을까. 세속이 중요시하는 구름 같은 허상만을 좇아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닌지 성찰하면 할수록 안타까움과 후회뿐이다. 흘러가버린 과거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법. 앞으로의 삶은 최소한 그분이 찡그리지 않을 정도로는 살아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해 본다.

그래서 이승이라는 간이역과 영원히 이별하게 되었을 때, 그래도 괜찮은 여행이었노라고 말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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