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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13:52

1:19

조회 수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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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체 가톨릭문인회
저 자 이상숙 안토니아 ● 시인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303
발행일자 2018-04-29
지난해 말이다. 농협에 병아리 20마리와 사료
1포대를 주문했다. 남편은 처음부터 이를 극구 반대했다. 그런데 병아리가 나왔으니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 나는 지난 석 달 동안 그 정도로 얘기하면 어느 지점에서 남편이 바뀔 줄로 알았다. 우리의 이런 사정과는 무관하게 친정 올케가 전화를 했다. 아침에 병아리를 받아놨으니 지금 당장 올라오라고.

병아리를 찾으러 가면서도 남편과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막상 종이상자 속 어린 그 생명체들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쩌다가 불장난을 쳐서 부모가 되었기로 이만큼 난감할까. 주문 이후로 서너 달의 준비 시간이 있었건만 말만 꺼내면 “병아리랑 나랑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가 남편의 결론이다 보니 그 차일피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남편은 그냥 남을 주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가 없다고 맞섰다. 언니는 빨리 가져가라고 독촉했다.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위탁을 하거나 재판매할 수는 없었다. 결혼생활 21년을 정리하나 할 만큼 하루 종일 싸웠다. 그래도 이런 와중에서 닭 집 하나가 대충 만들어졌다.

그래 놓고 보니 20마리 중 한 마리가 다른 닭들에게 얼마나 물어 뜯겼는지 피멍이 든 날개를 축 늘어뜨린 채 구석에서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 녀석을 꺼내 별도의 공간으로 옮겼다. 첫날밤은 무난히 잘 넘어갔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그 병아리는 흔적도 없어져 버렸다. 그 닭장에는 내 발도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나있었다. 

들고양이의 소행이었을까? 족제비의 만행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제3의 범인이? 마음이 아렸다. 차라리 같이 넣어둘걸! 후회도 막심했다. 전날은 남편에게 화가 나서 말하기가 싫었다면 이제는 처절한 약육강식의 이 현실이 서글퍼서 입술이 붙어버렸다.

이튿날 남편이 나 몰래 거금 30만 원을 주고 드릴 세트를 사 왔다. 이심전심! 우리는 남은 19마리를 잘 지켜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로 어느새 합심이 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닭 집 보수 공사에 몰입했다. 꼬박 사흘 만에 지붕까지 마무리를 하니 그럴싸한 닭장을 하나 만들었다. 닭들도 대만족인 듯 이제 그 숫자에 변함이 없었다. 

그날 밤 그 희생이 아니었다면 아마 얼렁뚱땅 만들어서 더 큰 참사를 불렀을 게 뻔했다. 그 한 마리의 순직(?)으로 나머지 19마리의 생명이 이중 안전망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 안에 99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1마리 양을 찾는 목자의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콕콕 쪼는 먹이 소리에서 ‘그가 죽임을 당함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었도다!’라는 말도 들려왔다. 

잃어버린 그 한 마리가 잠자는 내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병아리 사육에 앞서 치열하게 싸웠던 우리 부부를 손가락만 한 나사못으로 결속시켜 줬다. ‘닭도 달걀도 사 먹는 게 제일 싸다.’던 남편이 오늘도 “아들, 닭 모이를 주러 가자!”라며 아침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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