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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 09:55

아파트촌 까치집

조회 수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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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체 가톨릭문인회
저 자 이림 모니카 ● 동화작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304호
발행일자 2018-05-06
  구순을 넘긴 선배 문인으로부터 손편지를 받았다. 힘없이 쓰인 만년필 글씨에 가슴이 먹먹했다. 내용의 절반 정도를 까치집이 차지하고 있었다.
  - 우리 집 위층 에어컨 바람개비 상자 아래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였어요. “나무에 지어야지 왜 거기에…” 결국 그 둥지는 헐리고 말았어요. 가엾게도… 봄의 정경입니다.
  - 나의 관심사, 위층 까치집은 세 번이나 헐렸어요. 끈질긴 까치의 집짓기 정신에 감동하며 지켜보고 있어요. 네 번째도 시도할지…
  세 주 간격을 두고 두 번 나누어 쓴 글이었다. 그날 저녁, TV에 이런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 ○○ 아파트 1천여 가구에 정전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까치가 전봇대에 둥지를 틀면서 합선이 발생한 것입니다. 봄철 정전 80%가 까치집 때문에 발생한다고 합니다.
  아파트촌 까치집은 두어야 하나, 헐려야 하나? 잠시 갈등이란 낱말이 떠올랐다.
  갈등은 칡 나무(갈)와 등나무(등)가 얽히는 모습을 말한다. 오른돌이인 칡과 왼돌이인 등나무가 만나면 서로 반대로 타래를 감아올려 얽히고설킨다. 당기고, 솟고, 누르면서 뒤틀릴 대로 뒤틀려 불화를 일으킨다. 어린 시절의 나라면 지어져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들었을 것이다. 나이든 지금의 나는 별 망설임 없이 헐려야 한다는 쪽에 손을 든다. 실은 이런 까치집 문제 정도는 작금의 우리 사회적 상황으로는 그리 큰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TV 보도를 본 것만으로도 아파트촌 까치집은 헐려야 하는 쪽에 가치를 둘 것이고, 빨리 헐리기만을 바랄 뿐일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보편적 가치를 획득한 문제는 그런대로 평화적으로 해결된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평화적으로 해결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진리에 다다랐다고 할 수는 없다. 집 짓는 까치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대 도시의 모습은 우리 인간들의 편리를 위해 진화시킨 인공적인 것일 뿐, 지구 생명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란 걸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노 선배 아파트촌 까치집 이야기와 겹쳐 현재 우리나라 앞에 놓인 정치적, 사회적, 세대 간 갈등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이쪽이 옳다 해서 이렇게 하면 뒤틀림이일어나고, 저쪽이 옳다 해서 저렇게 하면 또 더 큰 뒤틀림이 일어난다. 어쩌다 합의점에 이르러 보편적 가치를 획득한 일도 잠시는 평화롭지만 곧 더 큰 폭풍이 되어 더 큰 불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얼마나 더 얽히고설켜야 하나 된 아름다움이 될까.
  신앙이란 절대 가치, 절대 사랑을 찾기 위해 묵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창조주 앞에서 생명의 본질을 찾고 회복하여 개인적, 사회적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말이다.
  머릿속으로 이런 영상을 연출해 보며 내 맘속 작은 갈등이나마 잠재워본다. ‘C시 까치집 대란. 인간과 까치들이 대치하고 있을 때 새 박사가 나타난다. 새 박사는 까치들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한 후 숲으로 이주시킨다. 인간들은 숲을 보호하고, 까치들은 도시로 내려오지 않는다.’ 기존 영화를 본뜬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지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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