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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00:25

창밖의 둥지

조회 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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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체 가톨릭문인회
저 자 정세정 아숨다 ● 시인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309
발행일자 2018-06-10
사철 푸른 가시나무가 점점 높아지자 지상 3m쯤에서 잘라준 지 2년 되었는데 새로 나온 가지들도 잘 자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4m 넘을 것이다. 굵고 튼튼한 원줄기는 기둥 같고 곁가지들이 받쳐주니 보금자리로 적당하다는 듯 새 두 마리가 마른 가지들을 물어오고 얼기설기 엮다가 들어가 앉기도 하며 둥지 크기를 조절하는 듯했다. 우리 부부는 아침식사가 끝나면 서재의 커튼을 올리고 관찰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가지를 부리 안에서 180도 바꿔 무는 재주도 보았다.

완성되었는지 두 마리가 같이 지낼 때도 있었고 한 마리만 있을 때도 있었다. 알을 낳았나 보다 생각하며 스마트폰으로 초점을 맞추면 우리를 보았는지 눈알을 굴리면서 머리를 움직였으나 그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직감으로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새끼도 잘 자라 산비둘기 가족이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는 대화를 나눴으니까.

이따금 고라니가 와서 시금치 잎도 모조리 뜯어먹고 접시꽃 싹도 뜯어먹었는데 아마도 그 줄기 같은 것이 부리에서 부리까지 연결된 것을 보니 암컷은 알을 품은 것이 확실해 보였다. 정원과 뒷동산에는 그들이 먹을 만한 먹이가 나날이 풍성해져서 나갔다 돌아오는 새의 배는 언제나 뚱뚱해져 있었다. 모래주머니에 가득 저장하고 날아왔음을 어렵잖게 짐작했다. 꼼작 않고 알을 품고 있는 인내와 저력에 신기함을 느꼈다. 드디어 부화한 듯 껍질을 깨부수는지 제자리걸음도 했다. 

거의 한 달 되었을까? 두 마리가 번갈아 먹이를 가져오면 새끼의 부리가 엄마나 아빠의 부리 속으로 들어가 꺼내 먹느라 두 마리의 머리는 동시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춤을 추듯 분주했다. 새끼는 두 마리였다. 머리통은 지름 2cm도 채 안되겠고 목덜미 털은 솜털로 바르르 계속 떨었다.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 날개도 살짝 폈다 접고 한 바퀴 돌기도 했다.

4월 중순 어느 날 앞마당 구석에 있는 마늘밭을 살피고 들어온 내게 한 남편 말에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물까치가 근처를 날아다녔는데 갑자기 까마귀가 날아와 새끼 한 마리를 채가더니 풀밭에서 깃털과 창자만 남겨놓고 먹었다는 슬픈 소식에 내 마음도 어찌나 아프던지! 정을 주었기 때문일까? 그 후부터는 산비둘기의 꾸우꾸우꾸꾸 우는 목쉰 소리가 자식 잃은 부모의 울음 같아 영 짠하게 들린다. 약육강식! 인간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신앙이 있고 성령이 역사하는 곳엔 분명 보호막이 처져 있어 다르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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