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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체 가톨릭문인회
저 자 차성건 레오나르도 ● 시인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311
발행일자 2018-06-24
봄꽃들 모두 떨어진 휴일 오후, 집 앞을 산책하다 문득 연못에 흘러드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새삼스레 벌써 가물가물해져 가는 겨울날들의 기억들이 아프게 떠올랐다. 그래 지나간 겨울은 정말 추웠었지. 그냥 추운 정도가 아니라 이곳 시골 동네 어르신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할 정도였지.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은 모든 물이 얼어붙어 이웃 마을로 피신을 하신 경우도 심심찮게 보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식구가 18년째 먹고 있는 물은 집에서 1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그야말로 깊은 산속 샘물이라 그곳에서 파이프를 집까지 연결해 늘 고맙게 이용하고 있었다. 샘물이라 겨울엔 따뜻하기도 하고, 파이프를 묻어 흙을 조금 덮었지만 그 위에 낙엽들이 계속 쌓이다 보니 따뜻하게 보온까지 되어 설마 하며 지냈는데, 며칠째 계속된 강추위에 결국 그 물줄기는 얼어버리고 말았다. 연못으로 떨어지던 물소리가 끊기고 꿈속에서조차 고민하게 만들던 그 겨울 물과의 사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쩔 수 없이 어르신들처럼 읍내 친구네 집으로 피신이냐, 이 산속 외딴 집의 사수냐를 놓고 식구들의 대책이 분분했지만, 결국 내가 화물칸에 물통을 싣고 이웃 마을 딸기 하우스 지하수를 실어 나르기로 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꼼짝없이 봄비가 내려, 온 땅을 촉촉하게 녹일 때까지 물을 길어 먹어야 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등골에 식은땀이 나는 지나간 겨울날의 풍경이지만, 풍족히 봄비가 내려서인지 까맣게 잊혀가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사실 그 깊은 숲속 샘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우리 가족, 닭들과 고양이 개… 온 농장 식구들이 먹고, 또 집안 곳곳을 돌아 필요한 곳을 채운다. 그러고도 남은 물은 다시 연못으로 쉼 없이 흘러들어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수초들과 연꽃을 피우게 하는 정말 고마운 물줄기다. 

얼마 전 자주 주일을 어기고 기도가 생활에서 멀어진 나날들에 대한 고해성사 때 “우리가 주님의 손을 놓아도 그분께서는 우리를 잡은 손을 결코 놓지 않는 분이시다.”라고 신부님은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을 가만 되새겨 보면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여러 모습이나 말씀을 통해 사랑을 내려 주시지만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따르거나 함부로 예단해 버리는 오만으로 그 뜻을 얼려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샘물이 얼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리는 그때의 느낌처럼, 근근이 이어져 오던 주님의 숨결이 나의 그릇된 마음으로 그마저도 얼어버리는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단비처럼 내려주시는 그 분의 말씀을 따르고 또 실천하여 내 삶을 원활하게 하라는 것이 주님의 바람일 거라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나는 산책하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연못가에 앉아 리듬을 이루어 경쾌하게 연못으로 흘러드는 물소리를 들으며 문득 흥얼거려 본다. 

성전 오른 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았노라. 알렐루야~~ 그 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 노래하리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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