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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체 가톨릭문인회
저 자 허태범 요셉 ● 수필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314
발행일자 2018-07-15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기 때문에 아침에 동쪽에서부터 밝아져 오고 해가 질 때는 동쪽부터 어두워진다.’라는 걸 학교에서 배우면서 그 내용을 도저히 진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었다. 내가 사는 곳은 거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동쪽에도 서쪽에도 북쪽에도 산이 가까웠고 저 멀리 남쪽에도 산이 있었는데, 내가 사는 동쪽산과 서쪽산 사이에서 보면 동쪽산 위로 해가 뜨면 우선 서쪽산마루부터 해가 비추기 시작했다. 동쪽산 아래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산그늘을 벗어나며 볕이 들고, 해가 서쪽산을 붉게 물들이며 넘어갈 때 이미 서쪽산 아래는 어둑어둑해졌지만 동쪽산 산마루에는 아직도 해가 비치고 있는 걸 봐왔는데 해가 질 때 동쪽이 먼저 어두워진다 하니 나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내가 바라본 세상은 그 동쪽산과 서쪽산 사이에 있었고 내가 본 진실은 산그늘로 인해 서쪽산 아래가 먼저 밝아지고 먼저 어두워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집스럽게도 그 좁은 시야로 얻은 지식을 진실로 믿고 있던 시절에서 조금씩 멀어지며 시야가 넓어져 더 넓게 더 멀리까지 볼 수 있게 되는 걸 성장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꽤 성장했겠다. 나도, 인류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지구라는 땅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하며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을 하기 때문에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인류가 더 넓은 시야를 확보했기에 알게 된 사실이다. 우주의 중심처럼 느껴지는 태양도 우주에 몇 개나 있는지도 모를 수많은 은하계 중 하나의 한 귀퉁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류가 알게 될 만큼 시야가 넓어진 건 인류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점점 시야가 넓어지고 멀리까지 보게 되면서 동쪽산과 서쪽산 사이에서는 보지 못했던 더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고 우리가 알던 진실들이 수정되는 과정들을 거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간의 과학이 신의 영역을 넘볼 수준인 듯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우주에 대해 사물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수록 오히려 우리가 아는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세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과 그 모든 것 위에 있는 존재를 느낀다. 인간의 힘으로는 다 알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더 큰 세상. 거기에서 보면 인류가 조물주께서 만든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 속에서 우쭐거리는 모습이 동쪽산과 서쪽산 사이의 어리석은 꼬마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며 월하 김달진 시인이 느낀 ‘머리 위 등 뒤에서 나를 바라보는 어떤 큰 눈’을 느껴본다.

“고인 물 밑/ 해금 속에/ 꼬물거리는 빨간/ 실낱같은 벌레를 들여다보며/ 머리 위/ 등 뒤의/ 나를 바라보는 어떤 큰 눈을 생각하다가/ 나는 그만/ 그 실낱같은 빨간 벌레가 된다.”(벌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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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 체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저 자 조회 수 발행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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