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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12:00

아일라와 터키

조회 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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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체 가톨릭문인회
저 자 강희근 요셉 ● 시인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315
발행일자 2018-07-22
며칠 전 영화 <아일라>를 눈물로 감상했다. <아일라>는 터키영화로 6·25전쟁 고아 아일라(김은자)와 터키군 하사 슐레이만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참전용사 슐레이만은 전쟁 중에 폭격을 맞아 가족이 일시에 사라져버린 5살 한국 어린이를 발견하고 부대 막사에서 데리고 생활하면서 이름을 터키말로 아일라(달)라 지어 부르며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상함을 보인다. 전쟁은 끝나고 부대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슐레이만은 여러 방법으로 아일라를 데리고 가려 한다. 그러나 부대 요건상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터키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맡기고 눈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약속하는 것은 지킨다는 말을 하고.

슐레이만은 대령으로 승급하는 가운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일라를 찾는 일에 몰두하지만 결국 60년을 우회하고 그 약속의 길로 돌아온다. 할아버지가 된 슐레이만과 60대가 된 아일라는 앙카라에서 먼저 만나는데 만나는 그 순간 아일라는 “바바, 바바, 아버지” 하고 가슴을 파고들었다. 전쟁의 폐허와 인간관계의 파괴라는 먼 터널을 지나 이렇게 두 사람은 ‘인간 승리’의 대단원을 이룬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년 전 성지순례로 ‘터키 그리스의 바오로 사도 선교 행로’를 가면서 터키에서 가졌던 감회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 중 버스에서 가이드는 슐레이만과 아일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그 애절한 사연이 형제의 나라라 여기는 터키와 한국이 갖는 정서적 한 단면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귀국 후 대형 강당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한 바 있는데 이때 아일라 이야기를 곁들여 함으로써 인간 승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이나 가족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 깊은 관심을 유도했다.

터키 이야기로 돌아오자. 바오로 사도의 고향 타르수스가 있고, 이스탄불의 소피아대성당이 있고, 에페소의 성모님의 집이 있고, 아시아 7대 교회가 있고, 가파도키아의 기암 절승 바위의 나라가 있다. 내게는 가파도키아의 기기묘묘한 바위와 바위 속 굴을 파고 살았던 박해시대 크리스천들의 삶의 모습과 데린쿠유 지하도시 8층까지의 하강 체험이 특별난 것이었다. “아, 이곳을 와 보지 않고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어지러운 열기구 탑승의 기막힌 기회를 얻어 환호했다. 그러나 에페소 근처 해발 400m 불불산 산꼭대기 아래 숨겨진 듯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성모님의 집’만은 터키 전역 성지에서 가장 활발한 ‘은총이 가득한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다른 곳은 대부분 이슬람 지배 국가이고 이슬람 외에는 입으로 전교를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어 타르수스의 바오로 사도의 고향에도 단 1명의 현지인 신자가 없다는 것 아닌가. 바오로 생가는 물론 없고 집터 옆에 우물이 2천 년 전부터 있었는데 시당국이 관광차원에서 두레박에 물을 퍼 올릴 수 있도록 해두었다. 나는 그 두레박에 손을 넣어 손가락으로 물을 찍었다. 서간문 한 줄이 딸려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터키 전역의 성지를 둘러보면서 왜 터키는 성지의 역사 안에서 폐허인가를 생각했다. 아시아 7대 교회도 그렇고 소피아성당도 그렇고 지하도시와 바위 속으로 들어간 박해받는 크리스천들의 주거지도 그러하다. 적어도 성지는 폐허이고 폐허의 교과서이다. 다만 신자로서 그 폐허를 읽어내는 방법이 성령이고 말씀이고 기도가 되어야 할 터이다. 말씀은 바오로 서간이거나 요한 묵시록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어떤 소설가는 로마의 폐허를 보고 이름답다고 말했다. 소설가의 읽어내는 방법이 미학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일라와 슐레이만이 그들의 일생으로 전쟁 속의 폐허를 이겨내었듯이 우리는 이제 성지 속의 폐허를 묵상 속에서, 기도 속에서 이겨낼 채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터키는 우리들의 든든한 교과서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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