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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4 11:57

그 길을 따라

조회 수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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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체 가톨릭문인회
저 자 김복희 우슬라 ● 시인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322
발행일자 2018-09-09
나이든 소나무들이 허리 굽혀 있다. 넓은 뜰을 사뿐히 걸어가면, 역사만큼의 무게를 짊어진 석축 건물이 한걸음에 다가온다. 본당 건물 꼭대기 더 높은 하늘 아래 휘장을 드리운 듯, 구름 한 점 지나간다. 하얀 성의를 입은 예수님상은 엄숙하고 장엄한 위용을 갖추고 서 있다. 중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요한 여명 안에 누군가의 눈빛인 양 맑은 별 두 개가 중앙 제대 아래에서 반짝인다.
그 성광에 이끌리어 무릎을 꿇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와 프랑스 출신의 성 라우렌시오 주교님, 성 야고보 샤스탕 신부님, 성 베드로 모방 신부님의 유해’라 적혀있다. 놀라움에 예를 갖추어 다시 유해 참배를 한다. 
프랑스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한국 최초로 진출한 곳이 거제도이다. 거제읍에 있는 거제성당이다. 그리고 거제도 최초의 애육원이라는 고아원을 운영하였다. 1956년 거제성당에 제8대 주임 신부가 부임했다. 프랑스 콘스탄티노 쯔부의 신부님이다. 62년 전, 그날을 회상하여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그날따라 하늘은 잔뜩 흐려있다. 바다는 검푸른 빛깔로 좁은 해협이 풍랑마저 더 높다. 노 젓는 돛단배에 흔들리는 몸을 싣고 견내량을 건넌다. 신부님은 하얀 명주 천에 싼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있다. 파도가 배 위로 물을 칠 때면, 양복 옷자락을 덮어 가슴에 끌어안는다. 파도가 높을수록 신부님의 묵주기도 소리도 높아진다.
통영에서 거제도로 거친 바닷길을 건너왔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걷고 걸었다. 수도원에서 마중 나올 차를 기다린다. 해는 짧고, 연락할 길도 없어 그냥 걷기로 했다. 간혹 지나가는 군용 트럭을 향해 손을 높이 들고 소리를 질러도 흙탕물만 덮어쓴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마음을 다잡는다. 냇물에 그냥 엎드려 벌컥벌컥 물을 마신다. 아무리 힘들어도 신부님은 작은 상자를 땅에 놓지 않는다. 자갈길을 걷고 또 걸어 까꾸막이 높은 산 밑에 앉았다. 이제, 해 떨어지기 전에 이 답답골 재만 넘으면 된다. 이 고개는 병인박해 때, 윤봉문 순교자가 거제 관아에서 진주 관아로 끌려간 길이다. 또 신유박해 때는, 순교자 유항검의 딸 유섬이가 관비로 귀양 오던 산길이다. 해가 깔딱깔딱 산을 넘을 때쯤 정상에 올랐다. 신부님은 하얀 상자를 끌어안았다. 어둡기 전에 산을 내려가면 된다. 산그늘이 바짝 따라온다. 산 아래 첫 동네인 거제 송곡 마을의 냇물 소리가 둥지를 찾는 산새들의 소리보다 더 높게 들린다.

거제성당을 나오면서, 기적과 구원의 의미를 생각한다. 유섬이 처자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토굴 속에서 동정녀의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는 오래도록 막연히 전해 내려온 이야기는 있었지만, 2012년 성당 제의방 카펫 교체 공사 중 구석 안쪽에 있던 작은 상자를 발견하여 제대에 안치하였다. 우리나라 초대 신부님의 유해가 전국 몇 군데에 안치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 먼 낙도 거제성당에서 유해를 참배하는 기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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