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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체 가톨릭문인회
저 자 김유철 스테파노 ● 시인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328
발행일자 2018-10-21
무궁화호 열차가 늘 나그네의 발이 되어준다. ‘무궁화’로 시작하는 수도원 가는 길이 얼마나 좋은가?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면서 한발씩 다가가는 길이다. 더욱이 고속열차 혹은 승용차에서는 미처 만날 수 없었던 지역을 지날 냥이면 마을이 먼저 나그네의 눈길에 부끄러움을 타는 듯이 창가에 스치고, 마을의 논두렁에서 피우는 흰 연기는 제 모습을 슬쩍 가리기도 한다. 그 광경과 풍치는 수도원 가는 길에서 거저 얻는 덤이다.

‘주님을 섬기는 학원’이란 문구가 들어간 새김 돌은 수도원 입구를 지키는 대장군 마냥 서 있다. 공기도, 바람도, 나무도, 붉은 벽돌들과 머리 위의 하늘빛까지 금방 지나온 문밖 세상의 것이 아니다. 다를 것 하나 없지만 나그네가 괜스레 그렇게 여기는 것일까? 아니 분명 그런 것이다. ‘지상에서 천국처럼’은 한 무리의 염송이나 뜬구름 같은 염원이 아니라 늘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일상의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 안에서 사는 수도자들의 발걸음을 느낀다. 그 발걸음에 담긴 마음이야 백팔번뇌에 있을지라도 발걸음은 어딜 디뎌도 수도원 뜰 안이며, 주님을 섬기는 학원 한복판이다. 수도복의 스치움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아주 오래전 하늘은 누군가를 세 번이나 부르시고 그 부르심 끝에 “예,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던 한 소년의 응답 장면은 늘 수도원 일상의 라이브이며 나그네가 듣는 수도복 스치는 소리의 전부다. 벌거벗은 사람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찾는 법이다. 태초까지 거슬러 오르지 않아도 우리는 누구나 벌거벗고 태어나며,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존재 앞에 늘 벌거벗은 몸이다. 그 벌거벗음 몸에 입힐 ‘새로운 옷’ 한 벌을 무엇으로 택할 것인지 왜관 수도원에 머무는 날이면 늘 ‘새로운 옷’ 한 벌을 생각한다.

올가을도 어김없이 왜관 수도원을 가려 한다. 무궁화호를 타고 ‘주님을 섬기는 학원’의 새김 돌에 배꼽 인사를 하고 싶다.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내며 수도복 스치는 소리를 여미는 수도자들의 등을 바라보고 싶다. 일상의 자잘하고 소박함 사이로 들어오는 그분의 자비로운 손길을 느끼고 싶다. 그곳의 같으면서도 다른 공기와 바람, 나무와 붉은 벽돌을 마주하며 머리 위 쪽빛 하늘을 바라보는 날이 오면 소리 없는 소리로 “아빠”라고 내 음성 스스로 들으며 부르고 싶다. 가을 들목에 만나는 ‘분도’芬道, 말 그대로 ‘향기로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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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 체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저 자 조회 수 발행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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