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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12:44

솔로몬 4

조회 수 79 추천 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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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258
발행일자 2017-06-18

솔로몬은 인접 국가 외교를 강화했고, 세력이 강한 측은 혼인 관계로 끌어들였다. 왕궁엔 외국 여인이 많아졌고 그들 종교도 자리를 잡았다. 왕족 출신 아내가 칠백 명 후궁이 삼백 명이었다고 전한다(1열왕 11,3). 물론 전승 과정에서 부풀려진 숫자다. 이집트 공주도 시집왔다(1열왕 7,8). 파라오 왕조는 철저한 근친혼이었다. 여간해선 타국에 왕족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혼인 관계를 맺은 것이다. 솔로몬의 힘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당시 이집트는 21왕조가 지배했고 세력이 약했다. 공주를 보내면서 가나안 성읍까지 지참금으로 줬다(1열왕 9,16). 


솔로몬은 지혜로웠다. 한 아기를 두 여인이 자기 아이라 우기자 모성에 따른 판단을 내렸다. 유명한 솔로몬의 판결이다. 지혜는 주님께서 주셨다(2역대 1,12). 핵심은 듣는 마음이다(1열왕 3,9). 말씀을 따를 때 지혜는 떠나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솔로몬은 변한다. 외국출신 아내들에게 빠져 그들의 말을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아내들이 섬기던 모압과 암몬 신들을 위해 산당을 짓고 제물까지 바쳤다(1열왕 11,7). 완벽한 우상숭배였다. 주님께서는 두 번이나 경고를 하셨지만 외면했다. 지혜는 서서히 그를 떠났다. 모압은 현재의 요르단이고 암몬은 시리아의 전신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약해진다. 솔로몬은 평범한 왕으로 죽었을 뿐이다. 통치 기간은 40년이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 북쪽 지파는 반란을 계획했고 동조하는 예언자도 있었다(1열왕 11,31). 솔로몬 사후 왕위는 르하브암에게 돌아간다. 그때 백성들이 청했다. 부왕께서 지우신 힘겨운 일과 멍에를 가볍게 해 주십시오(2역대 10,4). 세금과 부역이 가혹했다는 표현이다. 치세 말기에는 성경의 찬란했던 지혜는 없었던 것이다. 이끄심이 떠난 까닭이다. 빈부의 차는 극심했고 왕궁에는 이교 문화가 성행했다. 후궁마다 자국 종교를 신봉했지만 제재하지 않았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전성기를 이룩했지만 쇠퇴 원인도 분명 제공했다. 


그는 세속 군주가 아니었다. 차독 대사제가 기름 붓고 성별한 메시아의 선조였다. 그런 까닭에 우상숭배에는 빠지지 말아야 했었다. 후대인들도 안타깝게 여겼다. 그토록 지혜로웠던 왕의 어리석은 노년을 아쉬워했다.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으로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잠언이다. 표제는 솔로몬의 잠언이지만 그가 쓴 것은 아니다. 그의 시대가 한참 지난 뒤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의 합작으로 잠언이 기록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20170618_성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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