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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1 13:00

왕국분열 3

조회 수 61 추천 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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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262
발행일자 2017-07-16

첫 남북 전쟁에서 남쪽 유다가 승리한다. 원인은 솔로몬의 손자 아비얌과 병사들의 정신력이었다. 수적으로 열세였기에 주님께 의지했던 것이다. 패배한 북쪽 임금 예로보암은 재기하지 못하고 죽었다. 상황은 계속해서 남쪽에 유리해졌다. 하지만 통합에는 실패했고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갔다. 예로보암은 솔로몬이 발탁한 인물로 원래는 건설현장 감독관이었다(1열왕 11,28). 예언자 아히야를 만나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주님의 말씀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솔로몬에게서 이 나라를 찢어 너에게 열 지파를 주겠다. 너는 이스라엘 임금이 될 것이다. 네가 나의 규정과 계명을 지키면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1열왕 11,31).


누군가 아히야의 예언을 솔로몬에게 고해바쳤다. 당장 예로보암을 잡아들이라는 왕명이 내렸다. 어쩔 수 없이 이집트로 피신했고 그곳에서 때를 기다리며 저항세력을 규합했다. 솔로몬이 죽자 곧바로 돌아왔고 르하브암이 왕이 되자 전면에 나섰던 것이다(1열왕 12,3). 이후 북쪽 지파의 지지로 임금이 되었고 스켐을 임시 수도로 정하며 예로보암 체제를 시작했다. 그의 치세는 22년이었고 아들 나답Nadab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하지만 2년 뒤 바아사Baasha의 쿠데타로 나답은 살해된다(1열왕 15,27). 예로보암 왕조는 그의 아들 대에서 끝난 것이다. 


예로보암의 최대 실수는 우상숭배 허용이었다. 그는 왕족출신이 아니었다. 평민에서 왕이 된 인물이었다. 주님께서 뽑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생 잊지 말아야할 이 사실을 망각한다. 권력을 쥐자 방심했던 것이다. 왕이 된 그는 예루살렘으로 예배 가는 걸 막는다. 성전에 들어갔다가 사람들 마음이 변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궁리 끝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베텔Bathel과 단Dan에 세우고는 이렇게 홍보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오신 주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1열왕 12,28). 예루살렘으로 예배 가지 말라는 거짓 정보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금송아지 앞에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렸다. 임금의 우상숭배였다.


레위 지파가 즉각 반발했다. 목숨을 걸고 반대했다. 그러자 사제직을 박탈하고 다른 지파에게 사제직을 허락했다. 이 또한 율법을 어긴 행위였다. 예로보암이 죽은 뒤에도 후계자들은 베텔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철거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백성들의 예루살렘 출입이 꺼림직했던 것이다. 예로보암은 살아생전 자신의 맏아들이 죽는 비극을 체험한다. 민중을 죄짓게 한 보속이었다(1열왕 14,10).

 

 

20170716_성경(홈페이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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