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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8 13:39

아합과 이제벨 2

조회 수 36 추천 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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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266,2267
발행일자 2017-08-13

이스라엘로 시집온 이제벨은 왕궁에 바알 신상을 세우고 제사를 바친다. 자신의 종교를 신봉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예언자들 눈에는 우상숭배였다. 강력히 항의하자 왕비의 권력으로 눌렀다. 항의가 거세지자 옥에 가두고 핍박했다. 이제벨은 시돈의 공주였다가(1열왕 16,31) 아합의 정실이 된 여인이다. 당시 시돈은 도시국가로 이스라엘보다 군사 경제적으로 앞섰다. 그런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에 이제벨은 꿀리지 않았던 것이다. 

 

시돈Sidon은 지중해 연안 도시로 현재는 레바논에 속한다. 예부터 비옥한 땅이었고 페니키아라 불린 곳이다. 시돈에서 남쪽 40km 지점에 티로Tyre가 있다. 두 도시는 예수님 시대에도 이방인 도시로 유명했다(마태 11,21). 이스라엘은 가나안 지역 대부분을 정복했지만 티로와 시돈은 끝내 점령 못 했다. 그만큼 강했다. 남북으로 갈라지자 상황은 더 나빠졌다. 페니키아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합은 시돈 공주와 정략혼을 맺은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북쪽 방비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히브리인과 페니키아인은 가까운 관계였다. 문자도 같고 언어도 통했다. 페니키아 문자와 고대 히브리 문자는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알은 그런 페니키아의 수호신이었다. 

 

왕과 왕비가 바알숭배에 기울자 엘리야는 메시지를 전한다. 당분간 이스라엘 땅에 비가 오지 않으리라는 예언이었다. 3년 6개월간 독한 가뭄이 들었다. 보속이었다. 이렇게 해서 엘리야 예언자는 바알 사제들과 붙는다. 유명한 카르멜 산 대결이다(1열왕 18,20-40). 바알 사제 850명과 엘리야 한 사람이 맞붙은 것이다. 물론 과장된 숫자다. 그만큼 많은 예언자가 나섰지만 참 예언자 한 사람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엘리야는 민중에게 외친다. 언제까지 양다리 걸칠 겁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1열왕 18,21). 카르멜 산 대결의 핵심이 담긴 외침이었다.

 

제단 번제물에 바알은 불을 붙이지 못했다. 바알 사제들이 애절하게 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엘리야 차례가 되자 즉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모든 걸 태웠다. 기적이었다. 놀란 군중을 충동질하자 바알 사제들은 무참히 살해되었다. 사건을 보고받은 이제벨은 엘리야 제거를 맹세한다. 이렇게 해서 잠적하지만 예후를 새 임금으로 택하라는 계시를 받는다(1열왕 19,16). 엘리야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사라진다. 임무가 끝난 것이다. 

 

 

20170813_성경(홈페이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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