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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14:16

므나쎄 2

조회 수 66 추천 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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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282
발행일자 2017-12-03

열왕기는 므나쎄 왕이 산당을 복구하고 바알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다고 전한다. 놀라운 변신이다. 앞선 임금 히즈키야는 산당을 없앴고 모세의 구리 뱀까지 버렸다. 기적의 상징으로 보존해 왔던 물건인데도 없앴다. 민중이 그 앞에서 절하기에 우상숭배로 간주한 것이다. 제관들은 히즈키야에 적극 동조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리아에 맞서 자주권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즉각 보복 당한다(2열왕 18,14). 유다왕국은 순금 30탈렌트를 바치며 화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1탈렌트는 대략 30kg. 금 1돈(3.75g)을 17만 원으로 치면 400억이 넘는 돈이다. 허리가 휘는 지출이었을 것이다. 임금의 자존심은 무너졌고 병을 얻은 히즈키야는 그 여파로 죽었다. 

 

므나쎄는 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러자 제관들은 멀어졌고 민중과 토속신앙이 다가왔다. 왕은 하늘 군대를 경배하고 그들을 위한 제단까지 성전 뜰에 지었다고 했다(2열왕 21,5). 하늘 군대는 아시리아가 섬기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가리킨다. 이방신을 예루살렘 성전에 들여온 것이다. 철저하게 아시리아 편에 섰다는 기록이다. 제관들에겐 우상숭배요, 성전 모독이었다. 북쪽 땅을 되찾자는 이들에겐 치욕이요, 분노였다. 이들은 반발했을 것이다. 그들을 진압하며 숙청했다는 암시가 열왕기에 있다. 무죄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예루살렘 끝에서 끝까지 채워졌다는 기록이다(2열왕 21,16). 히즈키야 때부터 재야세력 지주였던 이사야 예언자도 이때 살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므나쎄는 아시리아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의 강한 힘을 인정하며 실익을 챙기는 게 현실적이라 판단했다. 아시리아 종교를 받아들이고 성전 뜰에 제단을 세운 이유다. 그러자 민중의 산당 제사도 살아났다. 므나쎄는 모른체했다. 결국 그의 손자 요시야 때 유다는 속국에서 벗어난다. 므나쎄가 일으킨 경제적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가 죽자 아들 아몬이 왕이 된다. 22세였다(2열왕 21,19). 므나쎄는 55년간 왕으로 있었다. 왕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아몬은 2년 만에 살해된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은 집권에 실패했고 아몬의 8세 아들 요시야가 뒤를 이었다. 유다 

16대 임금이다. 아시리아가 섬겼던 일월성신은 해와 달과 별이다. 고대 근동에선 하늘에 일곱 천체가 있다고 여겼다. 태양과 달 그리고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으로 불리는 다섯 별이다. 이곳에 신이 살면서 인간세계를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런 이유로 칠 일을 돌아가며 제사 지냈다. 오늘은 해신의 날, 내일은 별신의 날 이런 식이었다. 이 관습이 훗날 일주일 체제의 출발이 된다.

 

 

성경(홈페이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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