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2018.01.23 14:24

즈루빠벨 성전 1

조회 수 104 추천 수 0
Extra Form
저 자 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290
발행일자 2018-01-28

유배에서 돌아온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몰입한다. 믿음의 중심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즈루빠벨 성전이다. 당시 유대 총독이 즈루빠벨Zerubbabel이었기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유다 지파 사람으로(마태 1,12) 바빌론에서 태어난 2세였다. 즈루빠벨 뜻은 바빌론 출신이란 의미다. 이스라엘 이름은 세스바차르였다(에즈 1,8). 유대인 본국 귀환이 시작될 때 키루스 왕은 그를 총독으로 임명했다. 5만의 군중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였다. 1차 바빌론 귀환이다(BC 537년). 이렇게 해서 즈루빠벨은 이스라엘 행정을 책임진 관료가 되었다. 그와 함께 대사제 예수아는 바빌론이 약탈해간 성전 기물을 되찾아왔다. 물론 키루스 왕의 호의였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듬해 둘째 달(에즈 3,8). BC 537년 5월경,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는 성전 기공식을 한다. BC 587년 바빌론이 파괴한 솔로몬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이었다. 장소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규모는 초라했다. 옛 성전의 웅장함을 봤던 노인들은 눈물을 흘렸다(에즈 3,12). 그러나 백성 전체는 환호하였다. 이후 사마리아인과 불화 사건에 휩싸인다. 그들의 성전 건축 동참을 원로들이 막았기 때문이다. 이교도와 섞여 살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정한 존재가 되었는데 어떻게 참여시키겠냐는 것이었다. 사마리아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건축을 반역행위로 몰았다(에즈 4.16). 예루살렘 성이 완공되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 고발한 것이다. 이후 성전 공사는 16년간 중단된다. 즈루빠벨은 본국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언자 하까이와 즈카르야는 민중을 독려하며 기다리자고 외쳤다. 마침내 다리우스 왕 2년 공사가 재개된다(BC 520년). 임금은 국고지원을 명했고 조공 일부가 건축비로 들어오게 된다(에즈 6.8). 모든 결정의 중심에는 즈루빠벨 총독이 있었다.

 

마침내 기원전 516년 성전은 완공되고(에즈 6,15) 이듬해 봉헌식을 가졌다. 역사에서 말하는 제2성전이며 즈루빠벨 성전이다. 훗날 헤롯 대왕은 화려하게 증축했다. 46년 걸렸다. 제3성전이라 불리는 헤롯 성전이다. 하지만 70년 독립전쟁으로 무참히 파괴되었고, 통곡의 벽이라 부르는 서쪽 벽만 남아 있다. 제1성전은 솔로몬 성전이다. 기원전 967년 짓기 시작해 7년 뒤 완성되었다. 길이 31m, 폭 10m, 높이 15m 당시 건축기술로는 획기적인 건물이었다. 세 성전 모두 예루살렘 북동쪽 같은 장소에 세워졌다.

 

 

20180128_성경.jpg

 


Title
  1. 속죄의 날

    탈출기 32장은 금송아지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은 광야 생활이 불편했다. 모세가 십계 판을 받으러 자리를 비우자 불편은 불안으로 바뀐다. 한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불안감은 극대화되었다. 지친 백성들은 금붙이로 송아지를 ...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97 발행일자2018-03-18 file
    Read More
  2. 가나안 땅

    가나안Canaan의 어원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지역 특산품이었던 자주색 염료를 가리킨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고대사회에서 자주색 물감은 순금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다. 그러다 보니 자주색 옷은 부유층의 상징이었다. 토속 언어로 자주색 물감을 ...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96 발행일자2018-03-11 file
    Read More
  3. 예루살렘 성전 2

    솔로몬 성전이 있던 자리엔 현재 이슬람 건물이 서있다. 예루살렘 사진에 늘 등장하는 황금색 둥근 돔을 지닌 건물이다. 바위 돔 사원으로 불린다. 70년 헤롯 성전이 파괴된 그 장소다. 예루살렘 성전 터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야 땅...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95 발행일자2018-03-04 file
    Read More
  4. 예루살렘 성전 1

    초기 이스라엘은 계약 궤를 여러 장소로 옮겼다. 궤에는 모세의 십계 판이 담겨 있었고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으로 여겼다. 그런 이유로 계약 궤를 둔 장소를 지성소라 했다. 가장 거룩한 장소란 뜻이다. 다윗은 한 곳에 영구히 보관하려 했다. 예루살렘을 정...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94 발행일자2018-02-25 file
    Read More
  5. 헤롯 성전

    예루살렘은 해발 700미터가 넘는 산위의 도시다. 제1성전은 북쪽 모리야Moriah 땅에 있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곳이다(창세 22,2). 다윗이 여부스 사람에게서 매입했고(2역대 3,1)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다(BC 960년). 하지만 370년이 지...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92,2293 발행일자2018-02-11 file
    Read More
  6. 즈루빠벨 성전 2

    즈루빠벨 성전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솔로몬 성전보다 소박했던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기공식 때 옛 성전을 봤던 노인들은 울었다고 성경은 전한다(에즈 3,12).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옛 성전 중심은 계약 궤를 보관한 지성소였다. 궤 안에는...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91 발행일자2018-02-04 file
    Read More
  7. 즈루빠벨 성전 1

    유배에서 돌아온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몰입한다. 믿음의 중심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즈루빠벨 성전이다. 당시 유대 총독이 즈루빠벨Zerubbabel이었기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유다 지파 사람으로(마태 1,12) 바빌론에서 태어...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90 발행일자2018-01-28 file
    Read More
  8. 키루스 임금

    기원전 538년 이스라엘은 바빌론 유배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해방을 선포한 이는 키루스Cyrus 왕이다(2역대 36,23). 바빌로니아 멸망 직후였다.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라 했다(이사 45,1). 이방인으로 이렇게 칭송된 이는 이후 등장하지 않는다....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89 발행일자2018-01-21 file
    Read More
  9. 바빌론 유배 2

    바빌론 유배에서 유대인은 지난날을 돌아봤다. 선민 이스라엘이 어쩌다 이방인 포로가 되었는지 돌아봤다. 우상숭배의 벌로 받아들였다. 율법을 어긴 보속이라 여겼다. 다시 계약에 충실하기 위해 전승 자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역사서가 편집되고...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88 발행일자2018-01-14 file
    Read More
  10. 바빌론 유배 1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졌다(BC 931년). 북쪽은 10지파 연합체였기에 이스라엘 국명을 고수했고 남쪽은 유다왕국이라 했다. 유다 지파가 절대다수였기 때문이다. 211년 뒤 북쪽이 먼저 망한다(BC 722년). 백성들은 아시리아에 포로로 끌려갔고...
    저 자신은근 바오로 신부 가톨릭마산 발행호수2287 발행일자2018-01-07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8 Next
/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