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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노동절 담화문


인간은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노동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하지만 일한다는 것, 노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들고 고되다.


     가장의 걸음

산정 외딴집의 가장이
자신이 기른 묵직한 양배추를 지고
십 리 길 아랫마을 장터로 나간다.
어깨는 무거워도 사랑이 가득 담긴
아내와 아이의 배웅을 등에 받으며
맨발로 내딛는 가장의 걸음에는
할 일을 다 한 자의 당당함이 실려 있다.
                               (박노해, 『다른 길』, 느린걸음 2014, 54-55)


시인(詩人)은 노동의 보람(당당함)이 일 자체의 수고로움이나 노동의 결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가족들 사랑의 눈길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가족의 사랑이 노동의 고달픈 현실을 넘어 의미와 보람을 주는 원천이라고.
자본주의 경쟁 구조로 조직화된 노동시장에서도 이런 당당함을 견지할 수 있을지. 도대체 가능하기라도 하겠는지.


선한 포도밭 주인 이야기


이천 년 전 이스라엘 어느 마을에 포도밭을 가진 주인이 있었는데, 수확기가 되자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가 여섯 시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심지어 다섯 시까지도 일꾼을 사들였다. 튼튼한 이(齒), 강한 근육 위주로 고르다 보니 약한 놈은 뒤로 처져 고용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포도밭일 하루 품삯은 한 데나리온이었다는데,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노동자 한 가족의 하루치 양식값이라 한다. 주인은 늦게도 인력이 필요했던지 해가 지기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오후 다섯 시에도 한 사람을 고용했다고. 일이 끝나자 주인은 고용된 일꾼 모두에게 이미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씩 지불했다. 늦게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일꾼에게도 똑같이 주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지불 방식에 대해 아침부터 열두 시간 일한 일꾼들이 들고일어나 따지자, 주인이 말했다. “그대들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 받기로 나하고 약속하지 않았소.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에 고용된 사람, 그 약한 사람도 딸린 가족이 있으니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오. 그래서 그 가족의 생계를 생각해서 내가 그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는데 무슨 잘못이라도 있단 말이오”(마태 20,1-10 참조).   (정양모,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2001, 112-113 참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일터인 노동 현장은 치열하다.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정의를 내세우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들이대는 몰인정한 잣대와 에누리 없는 저울이 정의와 평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계산법은 인간의 계산법과 다르다. 하느님은 인간의 생산력과 효용성에 따라 품삯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선한 포도밭 주인이신 자비로운 하느님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함께 아파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동자를 일일이 따로 다르게 챙겨 주신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오늘날 노동 현장에서 배제된 이들과 내몰리듯 딱한 처지에 있는 이들 - 청년 실업자들, 해고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등 - 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몸처럼 살피고 돌봐야겠다. 몹시 미안한 마음으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배기현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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