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조회 수 213 추천 수 0 댓글 0

2018년 노동절 담화문


인간은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노동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하지만 일한다는 것, 노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들고 고되다.


     가장의 걸음

산정 외딴집의 가장이
자신이 기른 묵직한 양배추를 지고
십 리 길 아랫마을 장터로 나간다.
어깨는 무거워도 사랑이 가득 담긴
아내와 아이의 배웅을 등에 받으며
맨발로 내딛는 가장의 걸음에는
할 일을 다 한 자의 당당함이 실려 있다.
                               (박노해, 『다른 길』, 느린걸음 2014, 54-55)


시인(詩人)은 노동의 보람(당당함)이 일 자체의 수고로움이나 노동의 결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가족들 사랑의 눈길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가족의 사랑이 노동의 고달픈 현실을 넘어 의미와 보람을 주는 원천이라고.
자본주의 경쟁 구조로 조직화된 노동시장에서도 이런 당당함을 견지할 수 있을지. 도대체 가능하기라도 하겠는지.


선한 포도밭 주인 이야기


이천 년 전 이스라엘 어느 마을에 포도밭을 가진 주인이 있었는데, 수확기가 되자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가 여섯 시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심지어 다섯 시까지도 일꾼을 사들였다. 튼튼한 이(齒), 강한 근육 위주로 고르다 보니 약한 놈은 뒤로 처져 고용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포도밭일 하루 품삯은 한 데나리온이었다는데,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노동자 한 가족의 하루치 양식값이라 한다. 주인은 늦게도 인력이 필요했던지 해가 지기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오후 다섯 시에도 한 사람을 고용했다고. 일이 끝나자 주인은 고용된 일꾼 모두에게 이미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씩 지불했다. 늦게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일꾼에게도 똑같이 주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지불 방식에 대해 아침부터 열두 시간 일한 일꾼들이 들고일어나 따지자, 주인이 말했다. “그대들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 받기로 나하고 약속하지 않았소.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에 고용된 사람, 그 약한 사람도 딸린 가족이 있으니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오. 그래서 그 가족의 생계를 생각해서 내가 그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는데 무슨 잘못이라도 있단 말이오”(마태 20,1-10 참조).   (정양모,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 2001, 112-113 참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일터인 노동 현장은 치열하다.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정의를 내세우지만,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들이대는 몰인정한 잣대와 에누리 없는 저울이 정의와 평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계산법은 인간의 계산법과 다르다. 하느님은 인간의 생산력과 효용성에 따라 품삯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선한 포도밭 주인이신 자비로운 하느님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함께 아파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동자를 일일이 따로 다르게 챙겨 주신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오늘날 노동 현장에서 배제된 이들과 내몰리듯 딱한 처지에 있는 이들 - 청년 실업자들, 해고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등 - 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몸처럼 살피고 돌봐야겠다. 몹시 미안한 마음으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배기현 주교


Title
공지 1년이상 미접속 ID 삭제 안내 2015.08.31
  1. [부고] 제주교구 맥그린치(Patrick McGlinchey, 한국명: 임피제) 신부 선종

    제주교구 원로사목자이신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맥그린치(Patrick McGlinchey,한국명: 임피제) 신부님(1951년 12월 21일 서품, 향년 91세)께서 4월 23일(월) 오후 6시 27분경에 선종하셨습니다. 아래와 같이 장례 절차를 알려 드리오니, 참석하여 기도해 주시...
    Date2018.04.24 Category부고 Views344
    Read More
  2. [담화] 2018년 노동절 담화(교구장 배기현 주교)

    2018년 노동절 담화문 인간은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노동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하지만 일한다는 것, 노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들고 고되다. 가장의 걸음 산정 외딴집의 가장이 자신이 기른 묵직한 양배추를 지고 십 리 길 아랫마을 장터로 ...
    Date2018.04.23 Category담화문 Views213
    Read More
  3. [담화] 2018년 제104차 세계 이민의 날 국내이주사목위원장 담화

    “이민과 난민을 환대하고, 보호하고, 증진하고, 통합하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번 이민의 날 담화문은 교황님의 이민의 날 담화에 담긴 내용을 충실히 전하며 우리의 현실도 함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
    Date2018.04.23 Category담화문 Views102
    Read More
  4. [담화] 남북 정상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며

    남북 정상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마태 6,10). 지난겨울, 참으로 혹독한 추위가 우리의 삶과 대지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과 때를 맞추어 새로운 생명과 희망의 기운이 움트고 있습니...
    Date2018.04.17 Category담화문 Views129
    Read More
  5. [담화] 2018년 제55차 성소주일 교황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55차 성소 주일 담화 (2018년 4월 22일, 부활 제4주일) 주님의 부르심을 경청하고 식별하고 실천하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18년 10월에 개최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총회에서는 젊은이, 특히 젊은이들 사이의 관...
    Date2018.04.16 Category담화문 Views135
    Read More
  6. 주교회의,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지와 탄원서 22일 헌재에 제출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지와 탄원서 제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2018년 3월 22일(목) 오후 3시 30분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있는 헌법재판소에 방문하여, ‘낙태죄 폐지 반대 백만인 서명운동’(2017년 12월 3일-2018년 1월 31일)에 참여한 100...
    Date2018.04.10 Category소식 Views133
    Read More
  7. 천마교 2018-70(교구 사제 인사발령)

    Date2018.04.02 Category공지 Views1705 file
    Read More
  8. [담화]제주 4·3 70주년 기념 부활절 선언문

    ‘폭력과 죽음을 넘어 부활의 생명으로’ - 제주 4·3 70주년 기념 부활절 선언문 -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께 가득하시길 빕니다. 올해의 부활절은 예년과 달리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시기적으...
    Date2018.04.02 Category담화문 Views143 file
    Read More
  9. [부고] 수원교구 강희재(요셉) 신부 선종

    수원교구 소속 강희재(요셉) 신부님께서 심장 부정맥 시술 후 갑작스런 심장압전으로 3월 28일(수) 05시 47분에 선종(1975년생)하셨습니다. 다음과 같이 장례절차를 알려드리오니 참석하여 주시고 교우분들에게도 많은 연도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다 음 ▶ ...
    Date2018.03.29 Category부고 Views368
    Read More
  10. 성주간 · 파스카 성삼일 ‘예식서’와 ‘전례 성가’ 발행

    성주간 · 파스카 성삼일 ‘예식서’와 ‘전례 성가’ 발행 2018-03-09 관리자 조회 1,891 // 성주간 · 파스카 성삼일 ‘예식서’와 ‘전례 성가’ 발행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 전례를 더욱 경건하고 충실하게 거행할 수 있도록, ‘성주간...
    Date2018.03.20 Category소식 Views29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