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본문시작

조회 수 309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292,2293
발행일자 2018-02-11

back.jpg

 

쫓기듯 산길을 가는 선비가 있습니다. 달빛도 없는 늦은 밤인데 걸음을 멈추지 못합니다. 온몸은 땀에 젖었고, 머리도 헝클어진 것이 영락없는 도망자 모습입니다. 얼마나 허우적대며 갔을까? 전후좌우를 살피던 선비가 피막(사람이 죽기 바로 전에 잠시 안치하여 두던,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집을 이르던 말)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나라면 귀신이 나올까 두려워 도저히 들어가지 않겠지만 선비는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닌 모양입니다. 지친 선비는 몸을 누이자마자 잠이 들고 맙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입가에 피를 흘리는 허연 물체가 ‘스스스’ 선비에게 다가옵니다. 맞습니다. 원한에 목매어 죽은 처녀 귀신입니다. 잠들어 있는 선비 위에 올라타고는 목을 조르며 음산하고 기괴한 웃음을 웃습니다. “끼히히히히!” 저였다면 기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뜬 선비가 목을 졸리면서도 아주 시크하게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처녀 귀신 얼굴을 밀어내 버립니다. 그리고 그냥 다시 잠을 청합니다. 굴욕! 귀신 생활 10년 만에 이런 강적은 처음입니다. 처녀 귀신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심기일전 다시 힘을 내서 기괴한 소리를 냅니다. “끼햐햐햐햐 끄르르르 무섭지 않느냐!” 한쪽 눈을 살짝 뜬 선비가 말합니다. “무섭기는… 그냥 자.” 귀신 생활 최대 굴욕을 당한 처녀 귀신이 화가 나서 묻습니다. “귀신이 무섭지 않다면 넌, 뭐가 무섭냐?!” 선비가 몸을 뒤척이며 말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빚쟁이야. 난 지금 빚쟁이 피해서 도망치고 있어.” 선비 말을 들은 처녀 귀신이 흐느껴 웁니다. “흐흑, 사실 나도 빚에 쪼들리다 도저히 못 견뎌서 목매 죽었답니다.” 선비는 귀신의 딱한 사정에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갚을 수 없는 빚에 쪼들리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숱한 광고 중에서도 단연 많은 것이 보험과 ‘대부 업’ 광고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보험을 들고, 제대로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분들이 은행 이자보다 훨씬 높은 ‘대부 업’을 이용합니다. 그나마 대부 업체에서라도 돈을 빌릴 수 있으면 불행 중 다행입니다. 아예 고리 사채를 쓴다거나, 더 마지막까지 내몰리면 죽을 줄 알면서도 악덕 사채업자에게 장기 매매 증서까지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끔찍하죠!). 고리 사채를 쓰다가 막장에 몰리면 선비처럼 도망 다니거나 처녀 귀신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결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물론 누가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ㅠ.ㅠ).

 

 

오늘 사순 첫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 부활을 함께하기 위하여 많은 결심을 하실 것입니다. 담배 끊고(스트레스로 병 걸립니다), 술 끊고(사람 관계 끊어질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들을 끊고자 노력하실 것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부터 무엇을 끊기보다는, 하느님께 진 빚을 갚기로 했습니다. 이웃을 통해서 나에게 주신 은총과 기도, 사랑과 그 시간. 그 큰 빚을 조금이나마 갚아야겠습니다.

?
  • ?
    늘 푸른나무 2018.02.17 06:17
    빚진게 있는지
    되돌아 봐야 겠네요.
    좋은글 고맙습니다.

  1. notice

    사제의 한마디

    “가톨릭마산(교구보)”에 실린 사제의 한마디란을 게재합니다. 가톨릭마산 2017년 1월 1일자(제2234호)부터 백남해 요한 보스코(교구 사회복지국장) 신부님께서 집필하고 있으며, 격주로 게재되고 있습니다.
    Date2017.04.17 Views318
    read more
  2. “해서는 안 될 고독한 선택”

    “나는 팔에 힘이 없어 밥 먹기도 힘들다. 너희들 고생 시킬 것 같아 가니 그리 알고…” (77세 남성, 노환으로 고통 중 자살) “자식들한테 큰 짐이나 되어 죽는 날까지 고생할까 생각하니 무섭고 숨이 막힌다.” (60세 여성, 무...
    Date2018.05.03 Views251
    Read More
  3. “고독사”

    그저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것처럼 그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복지관 가는 출근길 어디쯤 . 그 할아버지는 바람에 쓸리고 비에 젖어 칠이 벗겨진 입간판처럼 말없이 거기 있었다. 두어 달. 낡아 버린 입간판이 세월에 스러져 치워지듯 그 할아버...
    Date2018.04.24 Views195
    Read More
  4. “사랑 자리”

    일찍 남편과 사별한 안나 씨는 하나뿐인 아들 요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 너무 잘 키운 아들을 떠나보내기 싫어 수도원엘 들어가라고 꼬드겼습니다.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의 희생과 정성을 잘 아는 아들은 차마 거절할 수...
    Date2018.04.10 Views314
    Read More
  5. “어쩌다가…”

    너무 큰 사고를 당했을 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을 때,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다가 우리한테 이런 일이…’ 작년 12월 21일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떠들썩하니 흥겨운 때에, 우리는 너무...
    Date2018.04.10 Views145
    Read More
  6. “외양간 고치기”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과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근심...
    Date2018.03.13 Views222
    Read More
  7. “내 복에 와이셔츠!”

    가슴 쪽이 묵직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황금빛 나는 샛노란 똥 덩어리가 가슴에 붙어 있습니다. “에이! 이게 뭐야. 똥 덩어리가 묻었어.” 기분 나쁜 마음에 손으로 툭 쳐내는데,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 그래 이건 꿈인데… 꿈에 ...
    Date2018.02.27 Views271
    Read More
  8. “사순을 시작하는 나에게”

    쫓기듯 산길을 가는 선비가 있습니다. 달빛도 없는 늦은 밤인데 걸음을 멈추지 못합니다. 온몸은 땀에 젖었고, 머리도 헝클어진 것이 영락없는 도망자 모습입니다. 얼마나 허우적대며 갔을까? 전후좌우를 살피던 선비가 피막(사람이 죽기 바로 전에 잠시 안치...
    Date2018.02.06 Views30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