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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2020.09.25 11:20

신학생, 투명해져야 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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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200927 4면 백그라운드(홈피용).jpg

 

 

문학을 번역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여기저기에 수많은 의미의 수수께끼를 남겼고, 이제 그것에 직면해야 한다. 문체의 흐름에 정신을 맡기고, 다른 언어와 문화의 벽에 부딪히고, 작품의 상승과 하강에 동참해야 한다. 외국어로 쓰였을 소설이 한국어로 쓰인 소설처럼 읽히는 새로운 경험, 그러면서도 원전의 강력한 힘을 향해 우리를 온전히 인도한다.

두 번째 은유, 번역가는 거울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은 작품의 ‘보이스(목소리)’를 듣는 능력이다. 흡사한 말로 대체한다면, 그것은 문학적 해석력일 것이다. 

번역의 세 번째 속성은 신탁이다. 원전에서 들려오는 계시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는 감수성과 헌신성 없이, 어떤 종류의 문학 번역은 아예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번역은 가장 깊은 읽기(deep reading)이다. 속독과 다독, 다시 읽기와 깊이 읽기 등 읽기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나, 이중 번역과 편집에 필요한 읽기는 가장 큰 낙차를 견디는 깊이 읽기다. 이 자질을 위해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지성으로 뒷받침되는 균형 감각이다.(박여영, “인트로”, Axt 31)

 

신학생은, 신神을 번역해내고자, 그분의 뜻과, 그분이 보내신, 그분과 같은 분의 삶과 가르침을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삶으로 소화해내며, 소화한 것을 전달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 어느 과정도 단순한 게 없습니다. 그러나 원리로 따지면 지극히 단순합니다. 이해하고, 소화하고, 전달할 것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화용론적 번역의 중심에는 독자가 있다. 우리말 사용자가 역서를 자연스럽게 읽고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럴 때 ‘제2의 창작’은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역자는 그 모든 과정에서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고 자신의 정체를 지운다는 점에서 여전히 겸손한 그림자이지만, 또한 저자와 독자의 소통을 이어주는 매개자이기도 하다.(김한영, “연탄재를 위한 변명”, Axt 31)

 

백성을 위한 삶을 준비합니다. 그분과 백성 사이에서, 자신을 우쭐대지 않는 겸손함과, 분명한 나침반이 되고 탄탄한 다리를 놓는 당당함을 겸비합니다.

 

번역가가 투명할수록 작가의 마술이 신묘한 효험을 발휘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투명 망토를 두르고 서서, 작가와 직접 대면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독자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퍽 짜릿하다. 번역가는 작품에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할수록 투명해진다.(허유영, “번역과 마술 사이”, Axt 31)

 

투명 인간이라 말하는 그런 존재감 없는 투명이 아닙니다. 그분을 닮아 존재감이 ‘뚜렷’해서, 그분께 겹쳐도 흐리지 않고 백성의 눈앞에도 방해가 되지 않는 투명입니다.

 

형체도 색깔도 없는 물, 생명이 있는 어디든 물도 함께합니다. 

그 어떤 틀에도 구속되지 않습니다. 형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색을 투영할 수 있습니다. 색깔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은 자기가 없으면서 존재합니다. 어떤 틀과 색깔,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품고 수용합니다. 그렇지만 결코 자기를 잃는 일이 없습니다. 

어떤 장소나 환경에도 적응하고 누구와도 어우러질 수 있는, 하지만 절대 자기 본질과 중심을 잃지 않는 지혜.(허성석, 물의 지혜, 「중용의 사부, 베네딕도의 영성」)

 

맛나고 멋나는 물이 아니라 맹물일수록, 물다운 물입니다. 그게 물맛이고 멋입니다.

 

사랑의 행위는 언제나 고백이다,라고 카뮈는 썼다. 조용히 문을 닫는 것도 고백이었다. 한밤중에 터뜨리는 울음과, 계단에서 넘어지는 것, 거실에서의 기침도 마찬가지였다.(니콜 크라우스, 위대한 집, 386)

 

창작자가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번역가는 인용하는 사람이라고 구분할 수도 있겠다. 그 문장이 전하는 어떤 경험을 알아볼 수는 있고, 그것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경험을 내 밖에 내어놓는 것이 된다. 니콜 크라우스의 문장을 빌리자면 “옮기는 것도 고백이었다”라고나 할까… 

내가 듣는 음악은 바흐가 그린 악보가 아니라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그의 음악이다. 동일한 악보에서 서로 다른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은, 연주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고, 연주자가 원작에서 감지한 경험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번역가가 자신의 경험만 참조해가며 옮긴다면, 그것은 언제나 원문의 뜻을 곡해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한계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번역자는 무엇보다도 한계를 가진 사람이다. 번역가가 정답을 보여주는 이가 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읽은 것을 제안하는 사람에 가깝다.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읽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그것은 분명 하나의 ‘발언’이기도 하다.(김현우, “번역, 그 소심한 말 걸기”, Axt 31) 

 

백성과 똑같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어야 하는, 유혹에 놓이고 죄를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체험으로 그분의 뜻을 곡해할 수 있는 한계도 있지만, 자신의 체험으로 그분의 뜻을 더 공감 가고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습니다. 이이가 보여주는 것이 정답은 될 수 없지만, ‘나는 그분을 이렇게 읽었고 체험했습니다.’라고 삶으로 발언하는 이, 그런 면에서 그는 예언자預言者가 됩니다.

 

좋은 번역이란 어쩌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세계가 열려 소통하는 기적이 벌어지는 장場이며, 그것이 발생하기 위해 축적되어야 하는 시간과 지식과 훈련과 고됨은 평생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키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그러하듯 사랑이 없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박여영, “인트로”, Axt 31)

 

신학생은 사제가 되어도 신학생입니다. 그분의 세계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평생을 다해 축적해나가는 삶에서 늘 신학생입니다. 축적해나가는 것을 멈추면, 교만해지고 비굴해지며, 흐려지고 방해가 되며, 뜻을 곡해하고 ‘막’ 말을 합니다. 신학생은 사랑이신 그분을 번역해 계속 써 내려갑니다. 그리하여 조금씩이라도 더 투명해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사랑에서 영감을 받았을 때 붓을 들며 마음속에서 사랑이 구수口授하는 대로 글을 써나간다.(단테, 신곡, 김문해 역, 연옥편 제24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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