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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2020.10.23 10:43

해녀, 그리고 수녀

조회 수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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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꼬마 해녀와 물할망, 그림책. 글, 선자은. 그림, 윤정주.

201025 4면 꼬마해녀와 물할망(홈피용).jpg

사진출처: YES24

 

바닷속 깊은 곳에 착한 물할망이 살았습니다. 늘 혼자여서 심심했던 물할망은 불턱에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해녀들과 함께 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물할망은 해녀처럼 꾸미고 그들에게 다가갔지만 해녀들은 모두 놀라 도망가 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진짜 해녀처럼 보일까?

물할망은 해녀들이 가지고 다니는 망사리와 테왁을 눈여겨보고, 전복을 딸 때 쓰는 빗창도 봤습니다. 그것들을 가져야만 해녀 행세를 할 수 있다고 믿고 몰래 잠시 빌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망사리를 살펴보던 꼬마 해녀에게 걸려 버렸습니다. 

 

미, 미안, 나도 너처럼 훌륭한 해녀가 되고 싶어서 그래. 

훌륭한 해녀가 되고 싶다는 물할망의 말에 꼬마 해녀가 도와주겠다고 나섭니다. 

 

해녀는 차가운 물속에서 오래 견뎌야 해요. / 그건 자신 있어! 사실 난 물할망…

참! 요즘 나쁜 물할망이 나타나서 해녀들을 잡아가려고 한데요. 조심하세요. 

입속에 물숨구슬이 있어 물속에서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물할망은, 자신이 물할망임을 숨긴 채 숨 가쁜 척하며, 꼬마 해녀가 보여주는 대로 숨 참는 연습을 따라 했습니다. 

 

해녀는 헤엄쳐서 깊은 곳까지 갈 수 있어야 해요.

너무도 쉬운 일이었지만 힘든 척하며, 물할망은 두말없이 꼬마 해녀의 말을 따랐습니다. 

 

해녀는 숨비소리를 잘 내야 해요. / 숨비소리가 뭐지? 그래, 바로 그거구나!

자신이 모르는 것, 숨비소리가 바로 해녀들의 비밀이라고 생각한 물할망은 멀찍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물에서 갓 나온 해녀들은 참았던 숨을 내뿜으며 가늘고 긴 소리를 뽑아냈습니다. “호오이~ 호오이~.” 물할망도 흉내내 보았지만 도무지 그런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자, 이번에는 물에 들어가서 소라를 캐 오세요. / 에이, 소라는 무슨! 전복을 캐 오마. 

큰 전복 하나가 눈에 띄었지만 바위에 단단히 붙어 있어 딸 수가 없었습니다. 꼬마 해녀와 함께 바다로 들어간 물할망은 얼마 후 드디어 전복을 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꼬마 해녀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해파리에게 쏘여 까무러친 것이었습니다. 물할망은 해파리를 쫓고 꼬마 해녀를 끌어안았지만 꼬마 해녀는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이를 어째? 이러다 죽겠네. 

물할망은 물숨구슬을 뱉어 꼬마 해녀의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잠시 뒤 꼬마 해녀가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물숨구슬이 없는 물할망은 숨이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꼬마 해녀를 안고 물낯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 영영 못 닿을 것만 같았습니다.

 

호오이~ 호오이~

간신히 물낯에 닿자, 물할망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참았던 숨을 힘차게 내뿜었습니다. 그러자, 마치 하늘나라 새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 같은, 가늘고 긴 숨비소리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이제 물할망은 진짜 해녀가 된 것입니다. 

 

아니, 물할망이 사람을 구했네!

모두가 일을 끝냈는데 난데없는 숨비소리가 나는 걸 듣고 해녀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호호호, 히히히, 으하하하

그 뒤에도 해녀들은 불턱에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었습니다. 물할망도 함께요. 

 

숨비소리는요…

0.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나 나만의 색깔, 개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수도자다움이라는 한 틀에 넣을 수도 없고 넣을 필요도 없습니다. 나의 개성을 억누르면 ‘나’의 토대가 사라지고 그렇게는 아무것도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1. 같은 삶, 그러나 더 깊은 삶을 삽니다.

그리스도 친히 모범을 보이시고 가르치셨으며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복음적 권고’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권장되는 것이지만, 특별히 수도자들은 이 권고에 따라 더 확고히, “고정된 생활 양식”(교회법 573조 1항)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수도자는 교회의 교계 조직이 아닌 “교회의 생활과 성덕에”(교회법 207조) 속합니다. 그렇게 수도자의 모습은, 지금, 여기에 있는 교회 영성의 척도입니다. 

 

2. 숨구슬을 만듭니다. 

해녀들은 처음엔 해초를 캐고 능숙해지면 깊은 바다에 들어가 전복 같은 해산물을 캡니다. 아무런 잠수 장비 없이 바닷속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고 고된 일, 그러나 바다를 사랑하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기에 뛰어듭니다. 해녀들도, 수도자들도, 더 깊은 곳에서 더 견뎌내는 만큼, 마지못해가 아니라 사랑으로 견뎌내는 만큼, 생명력을 머금은 숨구슬을 만들어냅니다. 세상을 등진 곳이 아닌, 세상 더 깊은 곳에서 영글어 냅니다. 

 

3. 숨비소리

해녀들이 물의 귀신 물할망같이 물숨구슬을 만들어낼 수는 없듯, 수도자는 완덕을 추구하지만 성령의 완전한 숨구슬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깊은 바다와 깊은 삶으로 물질을 할 때마다, 금세라도 톡 터질 것 같은 숨구슬 방울을 만듭니다. 숨이 턱에 닿도록 만들어낸 숨방울을 세상을 향해 뱉어낼 때, 마치 하늘나라 새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같은 숨비소리, 세상을 깨우고 생기있게 만드는 숨비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어리석은 자여, 인간은 숨을 안 쉬면 죽어.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 1화.

 

그런 귀하디귀한 숨을 걸고 사는 삶, 그래서 참 많이 힘들지만, 그래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해녀‘님’들이, 그리고 수녀님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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