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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고 문화 렛잇비 신앙
2020.11.20 11:26

의롭지만 죄인인 노아

조회 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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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노아 이야기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다. 그리고 노아는 아들 셋, 곧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다. 세상은 하느님 앞에 타락해 있었다.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찼다. 나 이제 그들을 세상에서 없애 버리겠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내가 보니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창세 6. 7.

 

이것이 우리가 아는 성경 속 노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는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아 1,2. 대런 아로노프스키, 아리 헨델 글. 니코 앙리숑 그림. 이현희 옮김

시작은 같습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십니다. 꿈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보게 된 노아는 방주를 건설합니다. 동물들이 방주를 향해 오고, 악의 무리조차 방주에 태워줄 것을 요구합니다. 노아는 방주가 완성될 시간을 벌기 위해, 얼마만큼 태워주겠노라고 ‘거짓’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방주의 모든 동물들과 첫째 아들 셈처럼 자신들의 짝을 찾고 싶어 하는 나머지 두 아들의 바람 때문에 ‘갈등’합니다.

 

노아, 이제 함과 야펫을 생각할 때가 아닐까요? / 혹시… 혹시 이 세상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건 아닐까? 어쩌면 창조주께서는 우리가 함과 야펫에게 짝을 찾아주는 걸 바라지 않으실지도 몰라. 여기 이 동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주는 것, 그걸로 인간의 임무는 끝인 거야. 그리고 인간은 사라지는 거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야펫이 동물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죽게 만들고 노아는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아이들하고 무슨 일이 있었나요? / 죽어 있는 이 짐승을 본 순간 화를 참을 길이 없어서… 창조주의 피조물 하나가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는 생각에 그만… / 그건 실수였어요. 사고였다고요! 아이들 탓이 아니에요. / 아이들을 탓하는 게 아니야.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책망하고 있어. 아이들의 행동이 아니라 내가 보인 반응에 대해서. 악은 우리 모두의 안에 있지.

 

노아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한편엔 세상의 운명이, 다른 한편엔 스스로의 욕망이 있습니다. 노아는 옳다고 여기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방주 바깥의 악한 사람들뿐 아니라, 노아 자신과 가족들까지도 사라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확신합니다. 함이 자신의 짝으로 삼고자 데리고 온 여자를 방주 밖으로 내몰고, 셈의 아내 일라가 임신한 것을 알고,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겠다 공표합니다.

 

보시기에 좋았다. 모든 것이 좋았다. 그것은 천국이었다. 창조주의 손안의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리고 남자가 생겨났다. 옆에는 여자가 있었다. 모든 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두 사람은 금단의 열매를 맛보았고, 그렇게 그들의 무구함은 사라졌다. 형이 아우를 죽이고, 나라와 나라가 싸우고, 인간은 세상을 파괴했다. 창조주께서 이루신 모든 것, 좋기만 하던 그 모든 것이 인간에 의해 파괴되었다. 우리가 바로 이 땅을 짓밟는 최후의 인간들이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 원죄를 물려받은 이들. 하지만 우리는 원죄를 대물림하지 않을 것이다. 

셈과 일라는 우리를, 너희 어미와 나를 땅에 묻을 것이다. 함은 그 둘을 묻을 것이다. 야펫은 네 형이 편히 쉴 수 있게 할 것이다. 야펫, 바로 네가 최후의 인간이 될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또다시 파괴하게 두어선 안 된다.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일라는 노아에게 부탁합니다. 우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달랠 수 있도록, 적어도 엄마 품에서 평화를 느끼고 잠들 수 있도록. 그렇게 아이들을 안고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아이들을 꼭 껴안은 엄마, 자장가를 불러주며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눈에 들어옵니다. 노아에게 인간은, 그때까지는 죄악 자체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일라의 모습은 사랑 자체인 인간이었습니다. 노아의 눈앞에, 그때까지 온통 시커멓던 하늘이 열리고 빛이 비추입니다. 노아는 오열하며 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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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는 못합니다. 못 하겠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확신에 따른 사명을 완수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아이들과 가족은 살아남았고 비둘기가 땅의 잎사귀를 물고 돌아옵니다. 새로운 세상, 생명은 이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하나같이 남을 배려하는, 인간. 

인간은 거짓말을 뱉고, 살생을 저지르고, 사랑을 한다. 노아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노아가 옳았던 것일까? 인간이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걸까? 

우리는 영원히 증오와 절망과 이기심과 교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했다. 

 

죄인이지만 의로운 우리

노아가 인간이 멸망해야 한다고 확신한 이유는, 의인이라 인정받은 자신도 방주 밖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엄마 일라의 모습을 통해 더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악인이라는 이들도, 의인이라는 노아도, 같은 인간입니다. 노아가 의롭다는 것은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죄성에 대해 고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고뇌하는 마음짓과, 사랑을 실현하려는 몸짓으로, 죄인이지만 의로움의 길을 갑니다. 새로운 세상은, 죄인을 쓸어버림으로 오는 게 아니라, 죄인들이 사랑함으로 오게 됩니다.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창세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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