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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광지 가타리나

양덕동성당에 들어서서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두 개의 길이 보인다.

이른바 신의 영역으로 오르는 길과 인간의 영역으로 향하는 길이다.

한 길은 완만한 경사를 통해 산책하듯이 올라 성전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이 만들어 내는 조형적 공간은 세상과 신성한 성전을 연결하는 전이공간이다.

돌아 오르면 마주치는 대형 십자가가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우뚝 서 있고 그 곁에 바로 성전에 드는 문이 있다.

또 한 길은 회합실과 부속건물(현재 보좌사제관)로 향해 놓여있다.

안쪽에 다다르면 담장과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뜰이 안온함과 정겨움을 자아낸다.

처음 형태와는 달리 사제관을 덮었던 담쟁이덩굴도 이끼 낀 바닥의 벽돌도 없어지긴 했지만 남은 흔적으로도 짐작하는 느낌이 있다. 

 

바위산에 핀 수정꽃

양덕동성당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자주 찾아오는데 건축물 때문이다.

이름을 떨쳤던 고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건축학도라든지 건축연구자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건물을 만나러 방문한다. 

1978년 11월 25일 헌당식을 할 당시 성당 주변 ‘반네들’이라 불리던 양덕들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곳에 온통 붉은 벽돌로 지은 ‘바위산에 핀 수정꽃’ 같은 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대 주임신부 오스트리아 출신 박기홍 요셉 플라츠는 새 정전 건축의 사명을 받았다.

그분은 인간과 신의 만남을 한 공간에서 이루고자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단단하면서도 따뜻하며, 신비로우면서도 인간미가 풍기는’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김수근 바오로 건축가는 그 간곡한 뜻에 따라 붉은 벽돌로 이루진

수직의 덩어리들과 건물하부의 깨진 벽돌을 쌓아 거칠고 강한 질감을 나타낸 작품을 오롯이 탄생시켰다.

40여 년이 지난 세월에 주위의 많은 건물로 둘러싸여 그 모습을 쉽게 찾아내지도 못하게 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성당 건물도 누수를 막느라고 여기저기 보수공사를 할 때마다 조금씩 처음의 자태가 모습을 달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가 55세에 세상을 따나자 그가 남겨놓은 건축물에 대한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작은 사람들을 귀하게 감싸는 보금자리

1975년 12월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나, 이듬해 3월에 낙성식을 한 가톨릭여성회관에서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아가야 했다.

가톨릭여성회관이나 양덕동성당은 모두 오스트리아 그라츠교구의 지원을 얻어 지은 집이다.

그 중심에 오스트리아 출신 하 마리아 관장과 박기홍 요셉 플라츠 신부가 있었다.

당시 마산은 수출자유지역으로 선정되어 많은 근로자들을 불러들였다.

양덕동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이 가까운 곳이라 가난한 근로자들이 참으로 많았다.

전국각지에서 가족을 떠나 모여 온 어린 근로자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따뜻한 곳이 절실히 필요했다.

가톨릭여성회관과 양덕동성당이 못다 배운 한을 풀 수 있는 길을 알게 했고 정서적 안정과 마음을 의지할 안식처가 되었다.

마산교구와 자매결연한 그라츠교구와 오스트리아 부인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으로 그 정신을 새기며

소외된 이웃을 귀하게 여기는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두 기관이 한 공동체를 이루었던 2년 반의 친밀했던 시간은 양덕동성당이 완공되면서 분리되었다.

하지만 인근에 있는 두 기관은 여전히 함께 사회를 향해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다.

신자들조차도 성당인지 회관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외부사람들은 그냥 한 기관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교좌 양덕동성당’의 이름으로 이루는 역사

예술적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바위산에 피는 수정꽃’ 성당 헌당식을 치른 다음해 양덕동성당은 마산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인준되었고,

4월에 교구장 장병화 요셉 주교의 첫 공식방문이 이루어졌다.

1966년 마산교구설정으로 남성동성당에서 수행했던 역할이 1979년 2월 7일에 양덕동성당으로 옮겨왔다.

이제 주교좌성당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양덕동성당 성전에는 장병화 요셉 주교좌가 1989년 2월까지, 박정일 미카엘 주교좌가 2000년 12월까지,

안명옥 F. 하비에르 주교좌가 2016년 5월까지, 그 이후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좌가 놓여있다.

그 자리의 주인은 마산교구장이고 양덕동성당과 신자들은 40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는 명예를 누리고 있다.

물론 그 명예는 많은 임무를 동반한다. 그냥 제대 위 십자가상 아래 주교문장이 있겠거니,

대축일이니 교구장이 방문하겠거니 하며 건성건성 바라보는 데서 그쳐서는 그 본분이 매우 부족하다. 

장병화 주교의 “사랑으로 서로 봉사하자”, 박정일 주교의 “충성과 온유”, 안명옥 주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소서”,

현재 교구장 배기현 주교의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에 이르는 문장의 사목표어도 명심하며 깨어있어야 한다.

성전에 들어서면 늘 마주보는 자리이니, 자리주인을 위한 기도가 쉼 없이 보태어진다.

 

양덕신자들은 권위 있는 자리를 가진 성당에 다니는 덕분에 조금씩 자부심을 가지고, 은근히 신심생활도 모범적으로 행하려고 노력한다.

교구의 각종 행사가 빈번히 열리고 교구 사제들이나 외부 사람들의 방문도 많으니,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 쌓일 수 있지만 사랑으로 견디는 법도 안다. 불평을 하다가도 “주교좌성당이니까!” 하며 서로 격려하고 미소를 머금는다.  

양덕동성당의 외양은 높은 아파트 숲에 묻혀 이제 낮아졌다.

반네들에 눈부시게 피었던 수정꽃도 가려졌다.

성전 공간도 좁아 큰 행사나 대축일에는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여 답답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오래된 붉은 벽돌이 뿜어내는 품격처럼 신자들의 마음속에도 품격을 갖춘 관록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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