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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뜨락
2020.02.21 08:35

주님이 지었네!

조회 수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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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도경희 스텔라 시인/가톨릭문인회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된다고 하는 지리산, 심호흡으로 오른다.

성경공부모임 ‘불씨’ 회원들과 산 초입에서 성심원 수사님을 만나 천왕봉으로 향한다.

숲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뿜어 짙은 풋내를 풍긴다.

부푼 가슴 못 이긴 철쭉들 모닥모닥 피어 산속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가지 끝마다 연둣빛 새순을 빼어 문 오리나무 아래 둘러 앉아 문 베아트릭스 지도수녀님께 배운 율동을 하며 성가를 부른다.

“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 주님이 지었네~~”

작은 새들이 꽁지를 끄덕이며 반갑다고 재재거리며 이따금 느릅나무와 으름덩굴 사이로 날아다닌다.

간혹 수녀님의 고운 소프라노 음을 물어가기도 하는 숲속의 작은 음악회. 산을 오르는 내내 몇 번이나 찬송을 했던가!

힘들지만 팔을 높이 들어 바람을 안아보고 화음 맞추어 노래를 부르다보면 금방 새로운 힘이 솟아나곤 한다.

노래 소리는 메아리로 돌아 ‘망 바위’에 어려 온다.

숨이 차다. 등성이를 오르며 슬금슬금 주저앉는다. 

 

중산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강낭콩을 넣고 가마솥에 밥을 지었다.

식지 않도록 겹겹이 천으로 싸서 손님 밥까지 지고 가는 어깨가 아파온다.

나는 바닥에 앉기도 힘들어 옆으로 뱃구레 순하게 누운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잠깐 숨을 고른다.

“솥~꽉꽉! 솥~꽉꽉!” 소쩍새가 운다. “올해는 풍년 들겠네” 하던 수사님이 얼굴의 땀을 훔치며 앞서간다.

푸르른 구상나무, 전나무 숲을 지나니 고사목이 시간보다 더디게 걸어가고 있다.

연초록 물결이 낮게 낮게 일렁이는 시누대와 산죽의 바다가 길 양편에 펼쳐져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외줄로 어울려 등을 보고 간다. 

 

“옴마야, 이런 까끌막을 우찌 오른단 말이가!” 쇠사다리를 타고, 밧줄을 잡고 기어오르며, 쇠난간에 의지해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다.

심장의 박동을 누르고 손차양을 얹고 멀리 바라본다.

저 아래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원 함양 쪽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 구름이 빨리 지나가는 게 보인다.

천왕봉 표지석 바로 밑 평탄한 곳에서 밥을 먹는다.

수사님은 우리 점심을, 우리는 수사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음식을 가져왔는지 식사가 끝나도 배낭은 줄지 않고.

배부른 배낭을 챙겨서 산을 내려오려니 어깨가 먼저 아파온다.

모두 신발끈을 옥죄고 행장을 추스른다.

어린 처녀들이 수사님께 짐을 하나씩 둘씩 맡긴다.

키 한 길이 넘는 배낭을 지고 일어서려다 수사님 한 분이 뒤로 넘어졌다.

자신의 짐도 많아 몸 가누기도 벅찰 텐데…. 우리가 건네는 짐을 다 받아주는 우직한 순정에 일행들 입이 함지박이 된다. 

 

‘불씨’ 회원은 해마다 성심원 환우 돕기 바자회와 일일찻집을 했다.

그 인연으로 오늘 함께 산을 오르며 행복 가득 채운 추억이 오래오래 마음속에 머물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잘 가꾸어진 비밀의 정원을 구경한 것보다 사랑을 한껏 건네받은 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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