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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형진 레오

전설처럼 내려오는 기적의 터

태평동성당은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긴 역사만큼 많은 사연을 안고 있지만,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1945년 말, 일본강점기 시절에는 성당에도 일장기를 게양하게 되었는데, 해방되고 나서 일장기를 더 이상 게양할 필요가 없어 본당 신부는 그날따라 그 자리에 교황기를 걸었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던 ‘두렉’이라는 미군 군종 신부가 이 교황기를 알아보고 산비탈 신정성당을 방문하게 된다. 미사가 끝난 후 군종 신부와 본당 신부는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성당이 어떻게 이렇게 초라할 수가 있느냐? 일본 사람들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이 많을 것이니 아무것이나 골라잡으면 조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래서 현재의 성당 자리에 있던 일본사찰 ‘명증사’를 인수하고, 절 내부만 개조하여 1969년까지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결국, 교황기가 새 성전을 선물한 것이었다.

 

200705 태평동성당1(홈피용).jpg

일본식 절을 사용한 옛 성당

 

순교자의 피가 뿌려진 순교자의 터

뮈텔 주교가 기술한 「치명일기」 817편에 보면, “이 요한 회장은 본래 동래 장교였는데, 울산에서 다른 교우들과 동래 포졸에게 잡혀 십칠 일 있다가 후에 ‘통영‘으로 가서 8명이 참수 치명하니 나이 팔십 세라.”라고 적혀있다. 참수치명 당한 곳의 기록이 없어 정확한 장소는 모르지만, 옛 통제영 울타리 안에 있는 태평동성당은 그분들이 치명 당한 성지라고 생각한다. 

 

또한, 제주도 함덕리 출신 김기량(펠릭스 베드로) 복자는 1866년 음력 9월에 동료 4명과 함께 박하유를 팔기 위해 통영의 게섬(지금의 산양읍 풍화리의 옛 지명)에 상륙하여 마을로 들어섰다가 낯선 이들을 수상하게 여긴 주민들의 신고로 당포만호영(산양읍 삼덕리 당포에 있었던 옛 수군 진영)의 포졸들에게 체포된다. 그들의 배 안에서 천주교 서적과 성물이 발견됨으로써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다시 통제영 본영으로 압송되었다. 그가 곤장 60대를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나자, 장살형杖殺刑만으로는 그들 5명의 목숨을 쉽사리 끊을 수 없음을 알고 그해 음력 12월(양력 1867년 1월) 교수형에 처했다. 기록에는 없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옥중에서 교수형으로 처해졌다고 하니, 그 장소는 바로 태평동성당 뒷부분 통제영 영지이다. 태평동성당이 성지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200705 태평동성당02(홈피용).jpg

현 태평동성당

 

태평동성당의 보물

태평동성당으로 올라가는 비스듬한 경사길에는 수령을 짐작하기 어려운 느티나무 고목이 신자들을 마중하고 있다. 1978년 이 고목 가지 사이에 동굴 모양의 석굴을 만들고 순백의 ‘성모상’을 모셨다. 그리하여 느티나무와 성모상은 태평동성당을 상징하는 친근한 기도처가 되었다. 지금은 좁고 위험한 언덕길에서 성모님께 기도하는 장소로 어려움이 있자, 성당 마당에 새로운 ‘성모자상’을 건립하였다. 한 성당 마당에 두 분의 성모님이 계신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지만, 고목 가지 위의 성모님은 그만큼 포기할 수 없는 첫 번째 보물 성모님이다. 

 

200705 태평동성당04(홈피용).jpg

성당 입구 고목 위의 성모님

 

두 번째 보물은 종탑에 걸려 있는 종이다. 이 종은 해방 후 불하받은 일본식 절이 이제는 성당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던 종이다. 그 후 새 성전이 완성되고 필요성이 없어진 종은 관할 섬 지역의 신설 공소마다 옮겨 다니다가, 2004년 본당 종탑으로 되돌아왔다.

 

세 번째 보물은 욕지공소의 ‘도유화성당’이다. 도유화란 그림을 그려 불에 구워 만든 타일을 벽면에 이어붙이는 것이다. ‘블루크로스’라는 청십자가 우뚝 솟은 도유화성당 욕지공소는 관광객이 많이 오는 이곳에서 입소문을 타서 이제는 꽤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다.

 

200705 태평동성당03(홈피용).jpg

도유화성당 - 욕지공소

 

태평동성당의 저력

태평동성당은 1929년 5월에 설립되었는데, 당시 이름은 신정성당이었다. 해방되고 나서 충무성당으로 개명하였다가, 1985년 대건성당을 분가시키고 이름을 ‘태평동성당’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통영은 본당이 설립되고 나서 근 60여 년 동안 전교 불모지였다. 바닷가의 미신이 강한 탓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본당 소속 ‘대건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반란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시도한 것이 통영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가톨릭 사상 강좌’였다. 80년대 초, 당시만 해도 민주화에 대한 갈망이 큰 시절이라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함세웅 신부, 정호경 신부, 두봉 주교 등을 모셔서 실시한 강연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성전뿐만 아니라 강당, 마당까지 당시로는 획기적인 스크린 화면을 동시에 띄우는 강의가 몇 차례 이어졌다. 그 후에 일 년에 2번, 한 번에 6~70명씩 입교식을 치렀다. 심지어는 60명씩 두 개 반을 편성하는 기적이 일어났고, 이 불길로 불과 이삼 년 후인 1985년에 통영지역의 두 번째 성당인 대건성당을 봉헌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또다시 북신동성당을 헌당하게 된다.

 

역사가 오랜 성당이 그렇듯이 지금은 노령화가 빠르게 다가오는 성당이지만, 올해 새로 부임한 23대 신명균 마르티노 주임 신부의 젊은 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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