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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
2020.09.03 17:32

자기 인식 - 관상觀想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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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수정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수도자가 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되십시오.” 

이 말씀은 20년도 훨씬 전, 수녀원 입회하여 몇 개월 지났을 때, 저희 수녀원에서 강의를 하셨던 한 신부님(호주의 타라와라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수도승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사)께서 하신 말씀인데 그 이후, 제 마음 안에서 늘 저를 안내하는 길잡이 말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긴장을 피해갈 수가 없고, 또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 자신, 그리고 함께하는 형제들에 대한 인식이 성장하며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앎도 자라납니다. 그래서 저희 시토회 초기 사부들은 수도원을 주님을 섬기는 ‘사랑의 배움터’ ‘사랑의 학교’라 부르기를 즐겨하였고, 이 사랑의 학교, 배움터에서 저희들은 ‘겸손’과 ‘자기 인식’에 진보를 합니다.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이 쉽지 않은 자기 인식의 여정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분노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 특히나 쉽지 않은데, 가령 제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어떤 부당한 취급을 당했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럴 때 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들, 이에 대한 저의 반응들은 저 자신의 자기 인식에 대한 바로미터로 작동합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의 모멸감으로 분노가 솟아오를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내가 받은 이 모욕을 되갚아주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1. 2. 3…. 번호를 붙여 상대방의 잘못한 내용을 적어 나가는데, 너무 화가 나니 손으로 쓴 글씨가 삐뚤삐뚤해졌습니다. 삐뚤거린 글씨를 다시 고쳐 썼는데도 역시 삐뚤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두세 번 고쳐 쓰며 씩씩거리다 길게 쓴 메모지를 반 접어서 한 편에 그냥 던져 두었습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그러나 그 분노의 감정은 전혀 가라앉지 않고 여전한 상태였습니다.

 

순식간에 분노의 회오리에 휘감기며 상대에게 화살을 쏘아 대는 공격성, ‘이 모욕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완고함, 상대방에 대한 비난 및 책임전가, 그 밑바닥에 ‘나는 잘못한 게 없어’라는 자의식 등등.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마태 18,15ㄱ)는 예수님 말씀이 그토록 도전적으로 다가온 적도 없었습니다. 단둘이 만나려면 상대방에게 가기 전에 먼저 저 자신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갈 수조차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너무나 크게 다가온 것입니다. 제게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직면해야 하는 부담감과 자아 이미지 손상에 저 자신이 솔직해지는 것, 있는 그대로 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순간, 참 신비롭게도 자신 안에서 내적인 힘이 솟아오르며 저 자신에게 당당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서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며 비로소 ‘가서 단둘이 만나’ 상대방의 상황을 물어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여유가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요.

 

저희 수도회 선배인 토마스 머튼 신부님은 하느님 안에서 참된 나를 찾는 과정이 바로 관상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관상은 피상적이고 외적인 ‘나’가 사실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고 관찰과 반성의 범주를 넘어, 설명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는 ‘나’를 자각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 인식은 바로 낯선 자아에 대한 관상의 자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분노하는 낯선 나 안으로, 기꺼이 들어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 자체가 신비이겠지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과 이웃의 모습 그리고 하느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관상의 자리가 더욱더 자라나고 깊어지는 순교자 성월이 되시길 빕니다.

 

200906 수도자 십자가(홈피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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