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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8 16:59

사람을 품은 진영성당

조회 수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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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정자 이사벨라

지역의 선구자 역할 진영성당

진영성당은 1957년에 성모병원을 개원했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질병과 가난이 득세했다.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바로 현실에 있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행동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신앙인의 사명이라면 진영성당은 거기에 정확하게 응답했다. 그때 진영성당은 병원을 지어 결핵 환자를 돌보았고, 환자가 거의 소멸할 때까지 운영하다가 폐원했다. 1962년에는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해 신자와 지역민들의 자립을 견인했다. 국가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교회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담담하게 해 오다가 국가가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면 거기서 손을 뗐다. 각 성당의 유치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입학하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할 만큼 교육의 질이나 시스템이 훌륭했다. 국가가 유아교육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자 교회는 과감히 거기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진영성당이 바로 그 표본이다. 병원과 해성학원과 복지관과 협동조합이 그 사례이다. 망해서 그만둔 게 아니라 교회 정신에 부합해 자연스레 자리를 내어 준 것이다. 먼저 생각하고 앞서서 실천하는, 지역사회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나무그늘 아래서

12대~14대 사목회장을 역임했다는 김중곤 비오(87세)와 부인 윤술련 바르바라(84세), 이삼순 율리아(89세) 어르신들과 함께 김승원 마오로(63세) 현 사목회장이 성당 마당 나무그늘 아래 탁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 회장도 1958년 유아세례를 받고 지금까지 진영성당 신자로 살아왔으니 만만찮은 진영성당 지킴이다. 하지만 산 역사를 모두 꿰고 있는 이 어르신들에게는 미칠 수 없다고 말한다. 1935년에 본당이 설립되었지만, 변변한 성전을 갖추지 못하였다. 1955년 12월에 성전 기공식을 하여 1956년 5월 1일 봉헌식을 올리기까지 신자들의 눈물 어린 노력은 짧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85년의 역사에서 그들이 함께 채웠던 시간은 땀과 감동이었다. 큰 행사 때마다 돼지를 몇 마리씩 잡아 삶고, 국밥을 수없이 끓여 내었던 젊은 시간을 회상하며 그들은 다시 행복해한다. 김 회장은 어르신들에게 친부모를 대하듯 “아버님” “어머님”으로 부르며 진영성당을 지켜온 기도와 봉사에 신자들을 대신해 진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이 사람들 말고도 떠나지 않고 진영성당을 지키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서로 이름을 들먹인다. 신자들이 모두 가족 같은 분위기라며 자랑스러워한다.

 

201011 진영성당 순례(홈피용).jpg

 

다시 전성기의 활기를 되찾아

진영은 구시가지의 본거지로 유동인구가 많았다. 그래서 병원이나 학교, 시장이 활기를 띠다가 남해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가로망의 변화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신시가지가 형성되면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 젊은 연령층이 대거 유입되었고, 사방으로 길이 열리면서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사람과 함께하는 교회는 사람과 함께 호흡하면서 시대의 모습을 스스로 담아낸다. 주일학교 초등부도, 중·고등부도 도시의 여느 성당보다 많다. 청년미사도 따로 올릴 만큼 활발하다. 주일미사가 3대이지만, 신자 수에 비해 성전이 크지 않아 교중미사는 강당으로 나누어 스크린을 통해 참례해야 하기도 한다. 올해 1월에는 본당 출신 서시몬 시몬 신부 서품식이 있었다. 많은 신자들이 창원문성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서품식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나게 했다. 이번 견진성사는 코로나19 거리 두기로 인해 9월 9일 수요일 저녁에 치렀는데, 교구장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의 주례로 거행되었고 74명이나 되는 많은 신자가 성사를 받았다. 견진성사 받을 때면 보통 2,30명이었던 시기를 생각하면 신도시로 인한 진영성당의 밝은 미래가 내다보이는 상황이다.

 

201011 진영성당 순례2(홈피용).jpg

201011 진영성당 소개(홈피용).jpg

 

순교자 신석복을 모셨던 진영성당

1935년 대구교구로 출발한 진영본당은 1963년 부산교구가 설정됨에 따라 부산교구 소속으로 되었다가, 1973년 교구 관할 재조정으로 마산교구로 편입되었다. 1985년에 본당설립 5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과 본당 50년사를 발간하여 역사를 기록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영성당의 중심에는 순교자 정신이 흐르고 있다. 명례 출신의 신석복 마르코는 1866년 3월 31일 순교하였다. 순교 후 가족은 시신을 명례로 옮겨오고 싶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반대로 강 건너 도둑골이란 곳에 안장했다. 진영성당에서는 110년 동안 쓸쓸히 묻혀있던 순교자 묘지를 찾아내어, 1975년 진영천주교공원묘지에 안장했다. 신자들은 묘소를 관리하고 순교 정신을 기리는 신심을 키웠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으로 거행된 서울 광화문 124위 시복식에서 신석복 마르코는 복자품에 올랐다. 명례성지가 조성되어 2018년 12월 8일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유해는 이장하여 명례성지 순교자 탑 아래 부활 경당에 모셨지만, 진영성당 신자들에게는 영원히 그들의 순교자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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