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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
2020.11.13 11:26

지상에서 다가올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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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고성 가르멜 여자 수도원

가을이 되면 모든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추운 겨울을 준비합니다. 거리는 형형색색의 나뭇잎들로 덮이고, 우리 또한 그 길을 걸으며 끝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가르멜 수도회는 11월이 되면 몇 년 전 시성되신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을 기념합니다. 돌아가신 지 110년이나 지난 후에 시성되셨지만, 성녀의 글들을 보면 현시대에 적절한 말씀들이어서, 지금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한참을 기다리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복잡하고 온통 소음에 가득 차 침묵이 사라진 21세기의 세상에 던져주는 큰 울림을 우리 모두 깊이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115 가르멜수녀원 주보11춤(홈피용).jpg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은 침묵의 성녀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침묵을 사랑했으며, 창조된 모든 것으로부터 물러나 하느님의 현존 안에 고요히 머무름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편지에서 “하느님께서는 벌써 지금부터 영혼에게 당신을 주시며, 영혼 안에 줄곧 머무르시기에, 하느님과 영혼, 이 둘은 하나입니다. 영혼은 사랑하는 그분과 하나가 되고, 어디에서나 그분을 뵈옵고, 모든 것을 통해 그분이 빛나시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에서의 천국이 아니겠습니까!”라고 쓰시며,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자신의 영혼 안에서 지상에서의 천국을 찾으십니다. 성녀가 말씀하시기를 가르멜 수녀는 가르멜 산의 침묵과 고독, 모든 것을 통해 계속되는 끊임없는 기도 가운데 이미 천국에서처럼, 하느님만으로 살아간다고 하십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가르멜에서 5년 3개월간의 짧은 수도 생활 후, 26세의 젊은 나이에 그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에디슨 병으로 죽어가면서도 온전히 자신을 하느님께 맡겼으며 자신의 소중한 체험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기를 바랍니다. “천국에서 나의 사명은, 단순하고도 사랑에 가득 찬 마음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영혼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도록 돕는 일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을 그들 안에 새기시어 그들을 차츰 변화시키실 수 있는 내적 침묵을 지킬 수 있도록, 영혼들을 내적 잠심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기보다 자신에게서 이탈함으로써 자유를 누리게 되며, 일상생활에서 자기 자신의 뜻에 집착하기보다 포기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우리의 생명 또한 쉽게 내어놓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에 들어서면 우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은 목격할 수 있지만, 결코 우리 개인의 죽음을 체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순수한 은총으로 주시는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게르하르트 로핑크가 『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라는 책에서 한 말처럼 “우리는 죽음 속에서 하느님을 궁극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길이고, 우리 신앙인들은 그것을 희망합니다. 끝이 있는 삶에서 영원히 계속되는 삶으로 넘어가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죽음으로써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잊게 되며, 전체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위령 성월을 보내며 먼저 가신 분들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끝없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또한 영원한 삶을 희망하며 죽음의 순간에도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겨드립니다.

 

끝으로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선종을 위한 기도’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내가 당신을 

들어 높여진 나의 자아로 인식하고 난 뒤에 

내 시간이 다가오면, 

주님, 나로 하여금 

나를 파멸시키고 축출하려고 하는 

낯설고 적대적인 모든 세력들에서

당신을 재인식할 수 있게 하소서.

내 육신이나, 내 정신에서 

노년의 쇠잔함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생명을 감소시키고 약탈하는 악이 

나를 외부로부터 습격하거나 내 안에서 생겨날 때,

내가 병들고 늙었다고 의식이 돌연 엄습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특히 내 최후의 순간에,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나를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미지의 세력의 손에 

무기력하게 넘어가는 순간에,

이 모든 암울한 시간에, 

주님, 나로 하여금 알게 하소서.

당신이 내 존재의 심층에까지 스며들어 

나를 당신께로 이끌어 가기 위해

고통 중에서 내 존재의 편에 서시는 분임을.

 

201115 가르멜수녀원 묘지예수님원본(홈피용).jpg

 

고성 가르멜 여자 수도원 원고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집필해주신 수녀님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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