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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칼럼
2020.01.16 10:52

무엇을 위해 신학을 공부하는가?

조회 수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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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가톨릭 평신도, 특히 여성이 신학을 공부한다면 누구나 한 번씩 들어 보았을 질문이다.

무엇을 위해, 혹은 왜 신학을 공부하는가?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이 질문에는 신학이 사제가 되기 위한 수련의 일부이거나,

학자들만의 전문적인 작업이라는 편견이 포함되어 있다. 

 

신학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theologia는 직역하면 ‘하느님(theo)에 대한 이야기(logia)’이다.

이야기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수단이다.

한 인간의 삶은 이야기로 재구성되어야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 이해될 수 있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길어올리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나와 남을 이해하고 아름다운 것과 못난 것을 구분하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익힌다.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인 신학은 그 서사의 중심에 하느님이 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특히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이야기다.

그 하느님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읽고 삶의 의미를 찾으며 다른 이들을 어우른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고,

의식적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신학 활동을 한다.

신학은 그러므로 사제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신앙인은 넒은 의미에서 신학자다.

한 인간의 마음에 신앙이 새겨지는 순간은 하느님과 그이 만의 독창적인 서사를 간직한 하나의 신학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하느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의 삶, 당신의 일상이 곧 하느님이 세상을 향해 풀어 놓는 이야기라니,

가슴 설레지 않는가. 오로지 당신만이 그 서사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다른 이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느 누구도 홀로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기록된 하느님의 이야기인 성서와,

전달된 하느님의 이야기인 전통을 통해 형성된 하느님에 대한 공동의 기억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된다.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공동의 기억으로써 하느님의 이야기와 신자 개인의 삶에서 우러난 개별적인 하느님의 이야기가 만나는 자리는 전례다.

신자들이 한 곳에 모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전례는

사도들로부터 전승된 교회의 기억이 신자들의 삶으로 선포되고,

신자들 각자의 마음에 싹튼 하느님의 이야기가 교회의 기억으로 들어오는 현장이다.

그러므로 신학과 전례는 분리될 수 없다.

하느님의 이야기인 신학은 전례를 통해 숨을 쉬며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된다.

 

넓은 의미로 모든 신앙인이 신학자이긴 하지만, 학문으로서 신학은 구체적인 목표와 전문화된 영역을 갖고 있다.

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비이신 하느님을 바로 알고, 믿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비는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될 수도, 인간의 언어에 온전히 담길 수도 없다. 그 한계로 인해 발생하는 오해를 성찰하고

더 적절한 이해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학의 역할이다.

신학의 분야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알리셨는지 연구하는 성서신학,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어떻게 수용하고 해석해왔는지 연구하는 역사신학,

하느님의 신비를 어떻게 인간의 이성과 언어로 이해하고 표현할 것인지 연구하는 조직신학,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살고 드러낼지 연구하는 실천신학이다.

근래의 현대 신학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이야기가 소통될 수 있게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신학의 분야를 기계적으로 분류하기보다 개별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분야를 아우르며

대화하는 통섭적 연구, 인문학과 과학의 연구 방법과 성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제간 연구를 선호한다.

 

모든 신자가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는 신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신학 활동을 표현할 명료한 언어를 찾을 수 있고,

일관적이고 체계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하여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

C.S. 루이스가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신학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비유가 참 적절하다.

“신학은 지도와 같다 […]. 교리 그 자체가 하느님은 아니다. 교리는 일종의 지도일 뿐이다.

하지만 그 지도는 하느님을 만난 수많은 이들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

만일 당신이 더 먼 곳에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도를 사용해야 한다.” 지도 자체가 우리의 삶터는 아니다.

그러나 지도는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고 길을 안내한다. 신학도 마찬가지다. 신학 자체가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신학은 하느님을 만난 수많은 이들이 걸었던 길을 우리에게 안내한다.

지도를 들고 길을 나서는 상상을 해보자. 기호와 문자로 존재하던 지도 속의 장소들이 나의 공간이 된다.

광장과 골목에 나의 이야기가 새겨지고 그곳을 다녀간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내 삶으로 들어온다.

이렇듯 신학을 지도 삼아 신앙의 여정을 떠나보자.

사도들과 교부들과 성인들이 이름 붙이고 지표를 세운 신비의 자리를 찾아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를 엮어보자.

수천년 교회의 역사에서 빛나던 광장들과 막다른 길로 여겨지던 후미진 골목들을 걸어보자.

그곳에서 신앙의 선배들이 느꼈을 흥분과 절망과 희망을 느껴보자.

지도의 지명에 착오가 있듯 신학에도 물론 오류가 있다.

그러나 길이 지워지기도 하고 새롭게 열리기도 하듯,

신학 또한 옛길이 저문 곳에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도 한다. 길은 함께 걸을 때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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