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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진선진 마태오 신부

폭설이 내리고 난 다음날 차 위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고 길을 떠나는 작은 차를 본다.

자신의 차 위에 쌓인 눈을 버겁게 느꼈을까 아니면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여겼을까.

만일 힘겨운 짐이라고 여겼더라면 눈을 치워버리고 길을 떠났을 것이다.

아마 운전자는 자신의 차 위에 쌓인 눈을 두고도 더 신나게 운전을 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어느 날 우리 자신을 짓누를 것 같은 무겁고 힘겨운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고 여겨질 때라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마치 차 위에 눈을 얹고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떠나는 운전자처럼 어떻게 우리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힘에 겨운 무게로 자신을 억누르는 십자가를 매고 대신 길을 떠나시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라는 그 말씀에

왜 마음이 아려오는 것일까.

십자가를 대신 지시는 그분의 마음 때문인지,

대신 져주시는 그분의 사랑이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자신의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고 투덜거리고 있는 내 마음을 보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십자가를 만들어 지워준 이

이른 아침부터 십자가로 쓸 나무를 다듬으면서 누가 어떤 죄를 지어 이런 험한 벌을 받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얼굴과 몸에 수없이 맞아 핏자국이 선명한 피투성이의 그를 내 앞에 데려오기에 내가 만든 십자가를 그의 어깨에 지워주었다.

십자가를 지는 그 모습이 너무 비참해 애처로워 보여 도와주고 싶지만,

단지 생각뿐 결국 그것은 당신의 몫이라고 여기고 말았다.

힘든 것에 대해서는 너의 몫과 나의 몫을 분명하게 나누는 것이 약은 행동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사는 당연한 방법이지 너를 위해 대신이라는 말은 사치에 불과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베드로

언젠가 당신께서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에,

제가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반박을 하였을 때,

저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당신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싫고, 저 역시 당신처럼 이렇게 십자가를 따라 질 용기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당신의 말씀을 온 삶으로 먼저 보여주시니,

저 역시 참으로 용기가 없지만 당신을 따르기 위해 저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어떠한 십자가라도 지고자 합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싫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당신을 따르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성모 마리아

피가 눈앞을 가리게 만드는 가시관, 채찍에 맞아 피로 범벅이 된 옷,

어깨에는 곧 짓눌려버릴 것 같은 커다란 십자가를 진 아들 예수님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자녀가 한 대를 맞으면 내가 백대를 맞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이 여느 부모의 마음인 것처럼,

지금 아들 예수님을 보는 내 마음은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밖에 무엇이 더 있을까 한다.

사람들을 위한 헌신의 결과가 십자가라는 것이 말이 되는지 세상 사람을 다 잡고 묻고 싶은 심정이고,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에 있나 소리를 쳐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일인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를 벌 달라고 빌고 싶지 않는 것은,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악함이 아니라 선함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

어디 성한 곳 없이 매를 맞고 머리에 가시관까지 쓰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픔이 되어 더 이상 내 몸은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나에게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올려놓는다.

사실은 십자가의 나무 무게보다, 십자가를 지우며 마음껏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이해받지 못한다는 그 마음의 무게가 나를 더 힘겹게 만든다.

내가 십자가를 진 것은 모든 것을 다 자기 탓이 아니고, 손가락질로 네 탓이라고만 하는 인간을 대신해 내 탓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나 역시 이 순간이 되니 너희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 마음이 목까지 올라온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느 누구 때문도 아닌 인간을 사랑하는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잃은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목자처럼, 그렇게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아버지께 갈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이 자리에 머물게 하고,

또 나를 지키는 유일한 위안거리인 것이다.

그 순간은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인간으로서 겪는 그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진정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구세주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아버지께서 나에게 지우신 그 뜻이 이해되고, 그 아버지의 사랑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면 사람들에 대한 실망도 다 눈 녹듯이 사라지겠지.

나의 십자가의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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