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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4 11:02

피난 간 소떼

조회 수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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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유례없는’이란 표현이 2020년에는 식상한 말이 되어버렸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전 지구를 초토화한 역병, 유례없는 경제 위기와 실업난에 이어, 유례없이 큰 규모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기후 재앙이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 가뭄과 폭염이 원인이 되었던 호주의 초대형 산불은 올해 초까지 계속되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야생동물의 목숨을 앗아갔고 무려 4억 3천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시켰다. 유럽을 넘어 러시아 극동까지 펄펄 끓는 폭염이 계속 되는 동안 시베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수은주가 급강하하며 때 아닌 눈이 내리기도 했다. 폭발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하며 습격의 강도를 높이는 바람에 ‘마른 쓰나미’라는 별명이 붙은 아프리카의 메뚜기 떼는 하루 3만 5천명분의 식량을 해치우며 파키스탄과 인도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5월 말부터 동아시아 각 지역에 물 폭탄을 떨어뜨리던 장마 전선은 이제 한반도를 덮쳐 역대 최대 규모의 폭우 피해를 주고 있다.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김용택, 섬진강 1 중에서) 살아있는 것들을 보듬고 이어주던 고즈넉한 섬진강이 시뻘건 흙탕물이 되어 화개장터를 삼켰다. 

 

참담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피해 소식을 읽던 와중 나는 전남 구례의 피난 간 소떼 이야기에 멈춰 한참을 머물렀다. 섬진강 홍수로 물에 잠긴 축사를 탈출해 도보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해발 531m의 사성암을 찾은 소들 이야기 말이다. 빗물이 다리까지 차오른 축사를 벗어난 녀석들이 이끄는 이도 없이 아스팔트와 산길을 저벅저벅 함께 걸어 찾아간 곳이 잡아먹힐 걱정 없는 스님들의 품이었다는,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다행스러우면서 또 슬프고 가여운 이 이야기가 내겐 어쩐지 우리 시대의 우화처럼 들린다. 녀석들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 ‘유례없는’ 기후 재난이 실은 숱한 유례가 있었던, 오히려 멈춘 적이 없었던 인간의 욕심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 살육의 역사에 결국 인간들도 스스로 잡아먹힐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이미 알려졌듯, 2020년 지구의 불바다와 물바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의 공통적인 원인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땅의 황폐화, 야생동물 수렵, 자원 고갈이다. 지난 7월 6일, 유엔은 “차후 팬데믹 예방: 인수공통감염병 확산 방지 방법(Preventing the Next Pandemic: Zoonotic diseases and how to break the chain of transmission)이란 보고서에서,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 팬데믹 등, 20세기 들어 발생한 신종 감염병의 75%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바이러스가 옮겨 가는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발병의 원인은 기후 변화로 인해 산불, 가뭄, 홍수 등의 극단적 기상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것과 더불어, 끊임없는 수렵과 벌목으로 야생동물의 다양성이 줄고 서식지가 파괴되는 현실에 있다고 분석한다. 생태계 교란을 통해 동물의 행동 습성이 변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동이 잦아지며 바이러스들이 원래의 숙주를 빠져나와 보다 안정적인 새로운 숙주를 찾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환경 파괴가 계속되는 한 기후 재앙은 더욱 빈번해지고 규모가 증폭될 것이며, 인수공통감염병 또한 모습을 바꾸어 지속해서 등장하게 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매년 기후 재앙이 닥칠 때마다 생태환경에 대한 경각심이 반짝 높아지다가, 복구와 더불어 다시 개발과 발전 논리에 먹히고 마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마치 종말을 경험하는 듯 절박했던 코로나 팬데믹 또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부분 ‘올드 노말’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반복되는 재앙으로 인해 얻는 교훈이 그저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지는 “돌아갈 수 있다”는 데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자연은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렇게 아프게,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인간에게 호소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찬미 받으소서」 반포 5주년을 맞아 올해 환경의 날

(6월 5일) 가톨릭교회가 발표한 담화문은 의미가 깊다. “성장 신화를 넘어 지속 가능한 세상으로”라고 이름한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강우일 주교는 “성장과 개발이라는 우상을 버리고 생태계 보전과 생명의 존엄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대전환’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위기,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한 지구 생태계의 수많은 위기에서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이웃과 아파하는 생태계를 외면했는지 돌아보고, “물질 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생명 중심의 가치관으로 전환하고 새로운 방식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 중심의 가치관이란 신학자 샐리 멕패이그Sallie McFague가 말했듯,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몸의 세포들로부터 가장 섬세한 정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에 속해 있다는 것, 바위와 파도, 대기와 흙, 식물들, 광물들과 더불어 세상의 모든 것들과 함께 어우러진 한 몸이라는 깨달음이다. 그 한 몸 생태계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몸이기에, 생명 중심의 가치관은 또한 하느님 중심 가치관의 다른 이름이기도하다. 그 생명 중심, 하느님 중심 가치관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은, 인간의 발전과 성장이 효율과 이윤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움과 나눔과 돌봄으로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구례의 소들이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는가 싶기도 하다. 흙탕물이 차오는 낡은 집을 버리고, 서로 의지하며 낯선 길을 걸어가 다른 생명들을 믿고 몸을 의탁한 그들의 모험 이야기는 정말 하느님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우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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