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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민아 마리아 교수/ 조지타운대학교

프란치스코 교종의 새 회칙 「프라텔리 투티Fratelli Tutti」를 읽었다. 어쩐지 이번 회칙 만큼은 누군가와 함께 읽고 싶어서, 친구 수녀님이 만든 온라인 읽기 모음에 나도 숟가락을 얹었다. 사는 지역도 하는 일도 종단도 다르고 이전에 서로 한 공간에서 만나 본 적도 없는 자매형제들이 교종의 시의적절한 호소가 담겨 있는 글을 함께 읽는 것은 새롭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전 회칙들을 읽었을 때는 생각지 못했던 이런 작은 공동체를 오히려 팬데믹으로 많은 것들이 제한된 상황 아래서 만들게 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고도 신선하고 행복하다. 한국어 번역이 출판되면 마산교구의 신자들도 꼭 누군가와 함께 읽으셨으면 좋겠다. 본당에서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작은 읽기 모임을 만드는 일도 시도해 봄직하겠다.

 

201115 4면 지평과 초월(홈피용).jpg

 

회칙의 제목 「프라텔리 투티」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형제들에게 남긴 28가지 권고(Ammonizioni)를 인용한 것이다. 성인이 하느님께 드리는 찬가인 ‘태양의 찬가’ 후렴구에서 제목을 빌어온 교종의 지난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와 마찬가지로, 이번 회칙에도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교종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모든 형제들’로 번역되기 때문에, 회칙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성차별적 명명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있었다. 맥락은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어로 옮길 때는 ‘모든 형제들’이 아니라 ‘모든 형제자매들’ 혹은 ‘모든 자매형제들’로 표기하는 것이 회칙의 메시지를 더 잘 반영하는 번역이 아닐까 싶다. 한국어판 공식 번역이 이렇게 출판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회칙을 인용하거나 읽을 때만이라도 의식적으로 ‘모든 형제자매들, 자매형제들’로 불러주시면 좋겠다. 회칙에 담긴 아름다운 내용이 잘 알려지기도 전에 제목 때문에 마치 여성을 배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참 안타까운 일 아니겠나. 

 

총 287개 항으로 구성된 회칙은 8장으로 나뉘어 있다. 회칙의 목적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교리적 논박이 아니라 성찰과 행동을 촉구하는 호소임을 교종은 서론에서부터 밝히고 있다. 사회 현실에 대한 교종의 날카롭고 타협 없는 인식, 특히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개인주의 문화,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은 「찬미 받으소서」보다 더 분명하다. 한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비유적 단어 선택, 절절하고 가슴 아프게 느껴질 만큼 감성적인 문체는 자연스레 기도를 불러오기도 한다. 각 장의 제목만 보더라도 세상을 향한 교종의 희망과 바램을 확연하게 읽을 수 있다. “닫힌 세상에 드리운 어두운 구름”(1장) 아래 우리는 “길 위의 이방인”(2장)을 만나고 그에게 손을 내밀며 “열린 세상을 상상하고 불러일으키”고(3장), “전 세계의 열린 마음”(4장)들과 연대해야 한다. “더 나은 종류의 정치”(제5장)”, 그리고 “사회 속의 대화와 우정”(제6장)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새로운 만남의 길”(제7장)을 닦아야 하며, 이렇게 “형제자매애를 위해 봉사하는 종교”(제8장)가 진정한 종교다.

 

201115 지평과 초월(홈피용).jpg

사진출처: Getty Images

 

이미 회칙에 대한 기사들이 많이 나왔지만,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부분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우선, 이번 회칙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언급이 무려 66번 등장한다. 교종은 “모든 이에게 평등한” “근본적인” “침해될 수 없는” “초월적인” 등의 형용사로 존엄성의 가치를 강조하며 바로 이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경제정책과 정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념과 이득이 아닌 인간을 섬겨야 하며,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부여된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권리에는 국경이 없기에, 어느 곳에서 태어나든 배제될 수 없다(121항). 난민들과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 정서, 정책적으로 그들을 수용하는 데 주저함을 보이는 국가와 종교의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39항).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말과 행위는 또한 구체적이어야 한다. 타인의 행복을 그저 추상적으로 염원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연대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 개인과 사회, 국가 간의 외교 정책에 모두를 포함하는 - 구체적인 실천으로 표현되어야 한다(115항). 한국 사회 양극화 현상의 가장 첨예한 이슈인 차별 금지법 논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교종의 입장은 분명해 보인다. 교리에 앞서 사람이 있다. 모든 행동의 중심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마치 자신의 집에 있는 듯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동의 집”을 만들어야 한다(230~232항). 

 

사람과 사람, 국경과 국경의 사이를 가르는“장벽들”(walls)에 대한 언급 또한 14번이나 등장한다. 교종은 이 “장벽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공포와 외로움이 “범죄조직”(mafia)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말하는데(27~28항), 이 “범죄조직”은 은유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 거짓된 정보로 판단을 흐리고, 대중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어 집단과 일부 지도자들에 대한 의존성만을 극대화하는 정치와 종교는 마피아적인 정치와 종교다. 그리고 이 마피아적인 정치와 종교가 현실화한 것이 불온한 포퓰리즘이며, 많은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계획과 권력 유지를 위해 이 포퓰리즘을 선동하고 있다. 저급한 언론은 또한 인간의 약점만을 부각시키고 최악의 상황만을 강조하여 포퓰리즘을 뒷받침한다. 마치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는 듯하다. 교종은 이러한 장벽의 문화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177항). 타자들을 향한 작은 친절이 만들어내는 기적은 이러한 장벽 문화를 바꾸어 사회에 만연한 “잔혹함, 불안, 절박함”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게 하는 “어둠 속의 별”이다(222~224항). “사랑은 다리를 놓으며, 인간은 사랑을 위해 창조되었다.”(88항)

 

단 한 번 언급되었을 뿐이지만, 내가 회칙에서 가장 감동을 받은 표현이 있다. 169항에 나오는 “사회적 시인詩人”이란 표현으로, 교종이 신자유주의, 민족주의,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대중운동의 필요성을 언급할 때 등장한다. 주류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들을 표현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만드는 대중운동이 요구되는데, 이 운동의 과제를 교종은 “시인”과 같은 것이라 말한다. 마치 시인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깊고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고 언어를 입히고 다듬고 매만져 세상으로 건져 올리듯, 대중운동은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희망을 보고 그 희망에 목소리와 몸을 입힌다. 시인의 시선으로 그 미세한 희망들을 향할 때, 별 볼일 없다 가능성 없다 미리 판단하지 않고 따사로운 눈길을 줄 때, 그 작은 것들은 생명이 되고 움직임이 되고 운동이 된다. 시인의 눈으로 생명을 보라는, 그 생명을 살게 하라는, 이 따뜻한 표현, “사회적 시인”에 나는 한참을 머무르며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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