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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재찬 안셀모 신부/ 분도 명상의 집

|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하느님의 부재不在와 영적 성장

 

예전에 어느 자매님께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아들 바오로는 어린 시절에 본당에서 복사도 하고 열심히 주일 학교에 참석했는데 언젠가부터 성당에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업 때문에 점점 성당에서 멀어지고 대학에 입학하고 난 다음부터는 아예 성당에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주일 미사는 그래도 지켜라’고 말하면, ‘엄마, 하느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면 세상에 왜 이렇게 고통이 있고, 전염병이 만연한 거야. 내가 생각할 때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아요.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당신의 자녀들과 창조물들을 고통스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라고 반박하며 성당에는 마음 약한 엄마나 다니고 더 이상 자신의 종교의 자유를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마 그 자매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의 가톨릭 가정에서 생겨가는 일 같습니다. 자녀들의 ‘하느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면 왜 세상에는 이렇게 고통이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는 그 전제가 부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만은 아니니까요!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면서 동시에 자비롭고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시며,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초월해 계셔서 우리는 마지막까지 하느님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는 그런 분이시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온전히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보다 더 크신 분이시며, 우리 모두를 선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넘어 더 큰 선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며 우리보다 더 크신 분께서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너무도 사랑하기에 아들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허락하시고, 그로 인해 우리 모두를 구원하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이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느님의 부재不在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는데 하느님이 하느님이신 줄 몰라보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직 눈을 뜨지 못했고, 귀가 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시면서 동시에 모든 곳을 초월해 계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만을 알고 있는 아들 바오로에게 자비와 인내와 기다림의 하느님, 더 큰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은 아직 부재중입니다. 인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 목숨 바쳐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그는 아직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과 세상의 고통을 치워 주시는 하느님만을 알고 있기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던 바오로가 훗날 삶의 고통과 시련 앞에서 어느 날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령의 크신 사랑을 체험한 후, 토마스 사도처럼 의심을 버리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신앙 고백을 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 하느님을 깨닫지 못한 이에게는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아직 세상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체험한 이들은 이제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성장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 변화와 성장의 여정은 하느님의 초월성 때문에 우리 삶의 전 과정에서 계속됩니다. 새로운 하느님께서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찾아 오십니다. 하느님의 부재는 새로운 하느님을 만나라는 표시입니다. “나는 지금 내가 만들어 놓은 하느님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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