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례 (明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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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년에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나자 신석복과 동료 신자들을 잡으러 대구에서 포졸들이 내려와 그의 집을 덮쳤다. 그가 진해 웅천(창원 마포라고도 함)에 장사하러 갔다는 사실을 알고 강 건너에서 기다리다가 행상에서 돌아오는 그를 체포하여 밀양을 거쳐 대구로 압송했다. 천주교에 입교하여 마르코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지 10여 년쯤 되는 때였다.
그의 체포 소식을 들은 형제들이 돈을 마련하여 대구로 압송되어 가는 그를 뒤쫓아 가서 포졸들에게 돈을 주며 빼내려 했지만 오히려 그는 형제들에게 "일 푼전(分錢)도 포졸들에게 주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로 인해 그는 밀양에서 하루를 머무는 동안 포졸들에게 무수한 형벌을 받았고 대구까지 끌려가는 동안 더한 능욕을 당해야만 했다. 대구서 처형되기 전에도 회유하는 관장에게 "저를 놓아주신다 하여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관장은 이 말에 화가 나서 더욱 혹독한 형벌을 가하고 며칠 감옥에 가두었다가 교수형을 집행했다. 1866년 3월 31일(음력 2월 15일)로 성토요일이었고 그때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에게는 아내와 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순교할 때 큰 아들은 16살이었다. 순교자의 부인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명례에서 살았다. 큰아들 이냐시오는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 중 막내인 신순균 바오로는 후에 사제가 되었다(1935년 수품, 1948년 선종 대구 성직자 묘지에 안장).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가 시성시복 기도를 바치는 동안 교회의 무심 속에 그의 생가 터는 낯선 이에게 팔려나가 축사로 변했고 대부분의 순교자 가족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4대와 5대 후손 몇 명이 지금 명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는 2014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광화문에서 시복되었다.
2017년 가을에는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 터에 아담하고 단순한 기념 성당(이로재 대표 건축가 승효상 설계)을 지어 봉헌할 계획이다. 명례 성지는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기념성당을 건립하는 것을 비롯해 명례를 신앙선조들의 삶과 신앙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복음화 학교를 열었으며 복자 신석복 마르코의 정신을 따라 ‘녹는 소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당신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당신과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녹는 소금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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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보기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안길 44-3
055-391-1205
<승용차>
* 창원(마산) 방향에서 오시는 길 : 국도 25번(또는 14번)을 타고 대산을 거쳐 밀양 방향 -> 수산대교를 넘자마자 300m 지점에서 우회전 -> 명례성지 도로 안내판을 따라(지방도로 1022번) 오시면 됩니다. * 부산 방향에서 오시는 길 : 서부산 톨게이트를 지나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동창원에서 빠집니다 -> 국도 25번(또는 14번)을 타고 대산으로 거쳐 밀양 방향 -> 수산대교를 넘자마자 300m 지점에서 우회전 -> 명례성지 도로 안내판을 따라(지방도로 1022번) 오시면 됩니다. * 진주, 순천, 광주 방향에서 오시는 길 :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부산 방향으로 오다가 서마산을 지나 동창원에서 빠집니다. -> 국도 25번(또는 14번)을 타고 대산으로 거쳐 밀양 방향 -> 수산대교를 넘자마자 300m 지점에서 우회전 -> 명례성지 도로 안내판을 따라(지방도로 1022번) 오시면 됩니다. * 대구 방향에서 오시는 길(대구부산 고속도로 이용) : 남밀양 IC에서 빠져 국도 25번을 타고 창원 방향 -> 낙동강을 건너기 바로 직전 수산으로 진입하여 약 500m 진행하여 백산 방향으로 좌회전 -> 명례성지 도로 안내판을 따라(지방도로 1022번) 오시면 됩니다. * 창녕, 부곡 방향에서 오시는 길 : 구마 고속도로 영산 IC에서 빠져 국도 1008번을 따라 약 30분 -> 부곡 온천을 지나 계속 직진 -> 양동 사거리에서 수산 방향으로 우회전(약 500m 진행) -> SK 주유소 앞 사거리에서 명례 방향(밀양 영화학교)으로 좌회전 -> 명례성지 도로 안내판을 따라(지방도로 1022번) 약 6km 오시면 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