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끝에서 나를 보며…”

by 미디어국 posted Dec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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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마산 발행호수 2286
발행일자 201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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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아침에 옷을 입으면 가벼운데

길에서 떠돌다 돌아온 밤

옷을 벗으면 무겁다.

아마, 삶의 무게가 하루만치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하루, 한 해의 시간은 

삶을 깎아 먹고 만들어진다.

 

나이 들어감이

거저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더 깎아 먹을 은총이 없어질 때까지 

버텨서 얻어지는 것이리라.

삶이 거덜 난 것은 사랑이 끝나고서야 알게 된다.

- 겨울바다(南海) -

 

나이 쉰이 넘어도 엎어져 무릎이 깨질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두려움인가!

 

한 해를 돌아봅니다. 저에게 가장 큰 변화는 교구청 발령입니다. 본당이나 사회복지 일선에서 주교님을 바라보았을 땐, 크고 인자하신 반면 인사권을 행사하시고, 교구 재산을 주무르고, 어디 가든 대접받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분 하시는 일을 곁에서 지켜보자니 안쓰러워졌습니다. 하루의 무게만큼, 한 달, 일 년의 당신 무게 만큼에다가 교구 전체 본당과 수많은 사회복지시설, 신심 깊은 교구민들의 바람과 소망까지 얹어서 살아가셔야 하니… 얼마나 더 많은 주님 은총과 신자들의 기도를 깎아 먹어야 할까요? 

올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며, 특별히 주교님과 신부님들을 위해 기도드려주십시오. 그리고 저도 기도드리겠습니다.

 

“함께 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미워했던 사람, 나를 미워했던 사람과 함께 하게 해주십시오. 용서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고함치고, 눈을 부라리고, 욕설을 해대었던 그 사람을 용서하게 해주십시오. 나에게 고함치고, 눈을 흘기며,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굴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십시오.

오늘은 화해하는 날입니다. 마음속에 응어리가 지고, 꼴 보기가 싫어서 얼굴을 돌리고 어디 가서든 그 사람만 보이면 보기 싫어 달아났지만, 오늘만은 화해하게 해주십시오. 오늘이 지나면 다시 오지 못할 마지막 시간이니까요. 어머니와 아들딸 사이에 화해를, 아버지와 딸 아들 사이에 화해를,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 화해를, 남편과 아내 사이에 화해를, 형제와 자매와 남매와 가족 간에 화해를, 마음 상해 떠나버린 친구와 친구 사이에 화해를, 나보기가 역겨워 가신 연인 사이에 화해를, 내 이웃집 담을 넘어서 화해를, 본당의 우리 신자와 신자 사이에 화해를, 남과 북의 형제자매들 사이에 화해를, 화해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오늘 밤만이라도, 아니 오늘 밤 이후에는 싸우고 삐치더라도 금방 화해하도록 해주십시오.

오늘은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밤이니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