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예수님 맞으러 갈까요?

posted Dec 26,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저자 서정홍 안젤로 시인/가톨릭문인회

해월 최시형 선생은 하늘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 데 의지한다고 했으며,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밥 한 그릇을 제대로 알게 되면 만사를 다 알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날이 갈수록 세상 사람들이 밥을 후닥닥 때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주 만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빠져도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하는데…….

 

작은 산골 마을에 들어와 농사지으면서 문득 저를 돌아보니,

세상 사람들 속에 제가 도시에 살 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날부터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여태 먹는 데 의지하고 살아온 보잘것없는 제가, 목숨 살려준 밥을 모시지 않고 때우고 살았으니 어찌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겠습니까?

 

스무 해 전쯤, 산골 농부가 되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아내와 자식들이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과 친구들과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다 반대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가 “산골에 가서 무어 먹고살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먹고사는 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그러나 먹고살 수 있게 봄여름가을겨울 묵묵히 땀 흘리며 농사짓는 농부를 단 한 번도 존중하거나 존경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제 둘레에는 농부를 존중하거나 존경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부모나 교사도 없었고 선배나 스승도 거의 없었습니다.

힘들고 돈벌이 안 되는 직업 가운데 가장 선택하면 안 될 것이 농부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스무 해 전이나 지금이나 아니, 더 게걸스럽고 약아빠진 세상에 어김없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아직도 세상이 이 꼬락서니란 말이냐? 먹고사는 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농부와 노동자)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먼저 감싸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들은 알고나 있느냐?

지난해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가 2,142명이나 된다는 것을.

지난해도 올해도 하루 약 6명이나 되는 젊은 노동자들이 죽어가는데도

그들의 영혼을 위해 단 한 번이라도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더구나 농민 재해율이 전체 산업 근로자의 재배율보다 2.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2019.10.15. 한국농어민신문)고 하는 데도,

그들을 위해 거리에 나가 단 한 번이라도 촛불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가을걷이’가 끝나면 한 해 쓴 농자재 값과 빚을 갚고 나면 ‘가을거지’가 된다는 농민들을 섬기지는 못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느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겠느냐?

이천스무 살 맞이 기념으로 내가 거나하게 술 한 잔 따를 테니.”

 

땀 흘리며 일해서 먹고살 생각은 않고 입과 머리(지식)로 먹고살 생각을 하는 자들이 늘어나는 비겁하고 위험한 세상에,

예수님이 따르는 술 한 잔 떳떳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예수님이 오셨다는데, 낯짝이 달아올라 문밖을 나서기가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