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나일론 신자’라고요?

posted Mar 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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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희선 가타리나 시인

우리는 종종 듣곤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나일론 신자’라고 얼버무리는 경우입니다.

사실 그 말이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주변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 자신도 수없이 뱉었던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나일론(나이롱)이란 말을 붙여서 쓰게 되었을지 문득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막연히 짐작은 가지만 정확한 근거를 알고 싶었습니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역시 면이나 실크와 같은 천연섬유와는 대비되는 인공적인 합성섬유라는 점에 차이를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연섬유는 진짜이고, 나일론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지나간 한 시대의 구교 집안과 일반 신자 집단의 미묘한 차이처럼 고루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처럼 간주됩니다.

물론 현재는 신자로서 열심인가, 열심이지 않은가? 라는 성급한 판단으로서 구분될 때가 많습니다.

식사 전에 성호를 긋는 것 하나를 예를 들어 보아도 자신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다면 나일론 신자라며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을 나일론 신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 신앙인으로서 나가야 할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핑계 같지만, 현대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을 듯합니다.

누구나 실크 옷을 입고 살아갈 수 없으며, 실용적인 면에서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일론이라는 소재가 개발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요? 

 

과연 나일론의 인기는 폭발적이었습니다. 실크와 같은 광택을 가지면서도 질긴 특성은 섬유의 혁명적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다양한 개발을 거듭하면서 우리 삶 전역에 퍼져있기도 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에 따라 어떤 물품들이 발명되듯이 어쩌면 우리 또한 ‘필요’에 의해 종교를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종교는 필요하지 않으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칭 나일론 신자라는 고백은 무신론자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 생각됩니다.

끝까지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다양한 역할의 무한한 잠재력이며 가능성일 것입니다.

‘꼴찌에게 갈채를’이라는 문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부터 스스로를 강퍅하게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공동체의 이해와 포용이 있다면 우리는 끝내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아래 진짜와 가짜라는 존재의 구분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