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복음 3장의 시작은 1장과 2장의 시작부분(루카1,5;2,1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과는 달리 구체적인 시간대를 언급합니다. 이는 세례자 요한의 행적이 가진 역사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티베리우스황제의 치세 제십오년이라는 구체적인 시대의 언급은 앞선 1장과 2장 의 배경이 되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통치시기와는 시간적으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루카는 이러한 기술 방식으로 세밀하게 복음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3장 전반부를 통해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의 회개의 세례 선포 장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인권주일을 맞아 또 대림시기(Advent)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루카복음 3장은 어떠한 신학적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림이라는 말마디 안에 크게 두 가지 신학의 주제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종말론의 주제이고, 다른 하나는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의 시작입니다. 총 4개의 대림 시기 주일 중 전반부에 해당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주일 복음은 종말론적 징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시간의 굴레 안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영원성에 대해 망각하고, 우리가 편승한 시간의 흐름에 입각하여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오시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루카 복음 3장을 묵상하면서는 정작 세례자 요한의 선포가 담고 있는 회개의 세례가 지향하는 본질적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전해들은 루카복음 3장의 시작부분은 6절을 통해 회개의 세례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그것은 구원의 원천이신 분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σωτήριον τοῦ θεοῦ) 을 보고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종말론의 관점에서 이렇게 표현됩니다: “시간과 공간으로 한계지워진 인간의 역사에 그분의 영원함이 머무르셨다.” 그리스도인은 각자에게 주어질 세상 마지막 날까지 하느님의 영원성을 바라볼 수 있도록 늘 깨어기다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종말론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되어야 합니다. 각자에게 주어질 마지막 날, 곧 하느님의 영원성에 들어서는 그순간 모든 그리스도인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 함께 하느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순간을 위해 깨어 기다리는 우 리는 일상에서 하느님의 흔적, 곧 그분의 구원사업에 참여하는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소중한 한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며, 그 생명이 안전하게 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주는 도움 또한 하느님 구원과 그리스도인의 긴밀한 연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징표입니다.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리아와 요셉의 도움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구원받은 구원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구원받은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행적을 통해 모든 피조물들이 하느님으로 부여받은 그 존엄한 생명과 질서를 살아갈 수 있도록 온 생명을 다해 봉사하셨습니다. 인권주일을 맞아 모든 피조물들이 하느님께 부여받은 생명의 존엄함을 살아 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느님의 구원을 각자의 일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다함께 깨어 주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