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느님의 말씀이 세례자 요한에게 내립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찾아오는 군중들에게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고 말 합니다. 이 말에 군중은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하고 대답합니다.
이해하는 데는 어렵지 않은 말입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말이기도 합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 준다는 것은 그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 있을 때 더 주저하게 됩니다. 애착이라는 것은 마음이 있는 자리에서 생겨납니다. 내 마음자리가 세상 것에 있고 세상 걱정에 있다면 세상 것을 모으고 지키는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잃을까봐 노심초사, 전전긍긍, 좌불안석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자리에는 이웃을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눈이 가려져 이웃이 보이지 않으면 그가 헐벗었는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입을 옷이 변변한 것이 없어 속상하고, 입맛에 맞는 것이 없어 불만입니다. 그러다 보면 감사함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주변을 채우게 됩니다. 불평, 불만은 한덩어리로 따라다니며 내 삶을 갉아 먹고 하느님에게서 나를 떼어 놓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서도 나를 떼어 놓고 맙니다. 삶은 풍요로운 선물이 아니라 지쳐가는 전쟁터처럼 변해 갑니다. 그 자리에서 불안은 무럭무럭 자라나 나를 방황하고 길잃게 합니다.
세례자 요한을 찾아간 군중들도 메마른 삶에 지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가 어른에게 물어보듯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나’라는 고립에서 벗어나 ‘하느님’, ‘이웃’을 보라고 초대합니다. 구원하러 오시는 하느님을 보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누라고 말합니다. ‘요즘 세상에 한국 사회에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변을 보는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내가 당연하게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결핍되어 있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자선주일은 우리 주변을 둘러보는 마음을 회복하고 이웃과 가진 것을 나누도록 초대하는 날입니다. 자선은 우선 주변을 보는데서 시작됩니다. ‘너’의 결핍이 보일 때,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그 자리에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고 회개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회개란 세상 것에 대한 애착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애착으로 우리 마음을 돌려 놓는 행위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기다림이 깊어가는 대림 제3주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