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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희망을 품고 미래를 바라본다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이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상황에서 이러한 전망이 빠져 있습니다. 그 첫 번째 결과는 생명을 전달하려는 원의의 상실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우려스러운 출산율 감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출산율 감소는 오늘날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의 속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고용 안정성과 적절한 사회 정책의 부재, 관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윤 추구가 의제를 좌우하는 사회 모델에 따른 결과입니다.

...우리 모두는 삶의 기쁨을 되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비슷하게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창세 1,26 참조) 하루하루 잘 지내고 현재에 안주하며 물질적 실재들을 통해서만 성취감을 찾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희년 칙서, 9항.

 

칙서는 이와 같이, 자기 삶의 일부를 회피하는 우리 모습과, 더불어 전쟁의 비극에 놓인 세상(8항)과 옥살이하는 이들(10항), 병자들, 장애인들(11항), 꿈과 열망의 좌절을 겪는 젊은이들(12항), 이주민들(13항), 노인들(14항), 가난한 이들(15항), 물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이들(16항)에 대해 말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아픔을 회피하는 우리 모습도 상기시켜 줍니다. 이런 회피도,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그러나 삶의 기쁨은, 현 시대의 유행 적 삶의 방식을 따름이 아닌,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다움, 곧 인간의 ‘전체성’을 찾음에 있음을, 칙서는 암시해 주 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날로그는 기계식, 구식이고, 디지털은 전자식, 신식인 것이 아닙니다. 이 둘은 정보를 처리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로써, 아날로그는 연속성, 전체성을, 디지털은 분리성, 부분성을 의미합니다. 초침이 끊김 없이 가는 시계는 아날로그 시계이고, 뚝뚝 끊겨서 딱 필요한 부분만을 표시하는 시계는 디지털 시계입니다. 보이는 전체를 찍어내는 필름사진은 아날로그, 점(화소)으로 그럴듯하게 보이게 찍는 사진은 디지털입니다. 음악의 경우, 디지털은 잡음을 제거해 필요하고 깨끗한 부분만 모아 완벽한 소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단, 많은 부분이 비어있어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불편하게 들 릴 수 있습니다. mp3가 그렇습니다. 아날로그는 잡음도 함께 있지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재생하기에 자연스럽고 듣기 편안합니다. 예전 레코드판이 그렇습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삶의 자세로 옮겼을 때, 아날로그는 과정 전체를, 디지털은 필요한 결과만을 중시하는 차이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실수에 대해서도, 허용하고 배우고자 하는 아날로그적 자세와 제거하거나 숨기려드는 디지털적 자세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현 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적인 효율성과 편리함, 빠름, 아날로그적인 깊이와 따뜻함, 여유 등의 통합이 필요하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점점 더 디지털화 되어가는 세상은, 효율적 일처리라는 관점에서 인간과 자연을 소외시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워라밸

많은 이들이 행복의 조건 중 하나로 ‘워라밸’(work워크, life라이프, balance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을 꼽습니다. ‘일과 삶의 균 형’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일과 삶의 분리’입니다. 일과 삶의 통합은 아날로그적 자세이며, 일과 삶의 분리는 디지털적 자세입니다.

애플의 드라마 ‘세브란스. 단절’은, 왜곡된 워라밸, 일과 삶의 분리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기억단절수술을 통해, 회사 안 기억만 가지고 일만 하는 ‘안사람(Innie)’과 일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밖사람(Outie)’을 분리합니다. 똑같은 사람이, 출근하면 ‘이니’가 되고, 퇴근하면 ‘아우티’가 됩니다. 그리고 그 둘은 기억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아우티는 똑같은 자신인데도 이니를 사람취급하지 않습니다. 이니의 엄청난 고통을 알면서도 외면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기 일부를 부정하는 사람은, 또한 희생당하고 고통당하는 타인들을 똑같은 이유로 외면하고 부정합니다.

워라밸을, 일과 삶의 분리로 여기고 집착하면, 결국 일은 일대로 고통스럽고, 삶은 삶대로 무감각해지는 인간의 분 열을 초래합니다. 나의 일부를 잘라내는 방식은 결국 전체를 잃는 길입니다. 일을 분리해 낸 삶이 내 삶이 아니라, 일과 삶이 모두 내 삶의 일부이며, 그 모두를 통합한 삶이 내 삶입니다. 행복은 ‘일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일과 삶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존재됨’ 안에 있습니다. 삶은 통합되어야 하고, 인간은 ‘전체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 통합됨 안에 삶의 의 미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당신 전체로 오시는 하느님, 나 전체로 응답하는 우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유일한 ‘말씀’이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에게 주실 다른 말씀은 없습니다. 당신 아드님 전체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예언자들에게는 부분적으로 말씀하셨던 것들을 당신 아드님 안에서는 전부 말씀하셨습니다. - 십자가의 성 요한 「가르멜의 산길」, 2, 22, 3.

성서의 모든 말씀으로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한 ‘말씀’을 하신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 ‘유일한 말씀’ 안에서 당신 전체를 표현하신다. -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2항.

신앙으로써 인간은 온전히 자신의 지성과 의지를 하느님께 복종시킨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전체로,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동의를 드리는 것이다. - 교리서, 143항.

하느님의 모습대로 지어진 ‘인간’은 육체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존재이다.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창세 2,7)는 성서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상징적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전체적인 인간을 원하신 것이다. - 교리서, 362항.

인간의 육체는 ‘하느님 모습’의 존엄성에 참여한다. 그것이 인간의 육체인 것은 정확히 말해서 영혼을 통하여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성령의 성전이 되는 것은 바로 인간 전체이다. - 교리서, 364항.

인간 안의 정신과 물질은 결합된 두 개의 본성이 아니라, 그 둘의 결합으로 하나의 단일한 본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 교리서, 365항.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 루카 10,27. 28.

 

신앙은 우리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우리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요청합니다. 예배와 기도, 노동과 쉼, 관계와 고독까지, 모든 삶의 장면에서, ‘전체’로서 오신 하느님은 ‘나 전체’를 원하십니다.

어린이가 어른 되기만을 기다린다면, 신학생이 신부 되기만을 기다린다면, 학생이 방학만을, 직장인이 퇴근만을 바란다면, 나는 지금 여기 온전히 육화하지 못한 것이며, 소중한 나의 일부와 삶의 일부는 배제되고 버려지는 겁니다.

‘나 전체’로서, 주어진 삶의 모든 부분에 온전히 들어가 머물며 살아갈 때만이 ‘나’가 됩니다. 나가 ‘살게’ 됩니다. 나 처럼 사랑하는 ‘이웃’도 살게 됩니다. 살아가는 매순간 맞게 되는 온갖 부조리에도, 나는, 우리는, 희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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