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
2025.07.02 11:35

영원한 생명 - 네겐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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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흠..


“[저는]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이 말씀에서 그 본질적 토대를 발견합니다. 희망은 “우리의 행복인 ……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향주덕”이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희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 기초를 두지 않고 영생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오늘날 흔히 그러하듯 인간의 존엄성은 극심히 손상될 것이며, 생명과 죽음, 죄와 고통의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아 사람들은 흔히 절망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구원한 희망에 힘입어, 인류의 역사와 우리 개개인의 역사가 결코 막다른 길이나 어두운 심연을 향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주님을 만나 뵐 때를 향하여 간다는 확신의 눈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분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희망을 품고 우리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으로, 거룩한 성경의 맺음말이기도 한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진심 어린 기도를 함께 바칩니다.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 - 희년 칙서 19항    

 

엔트로피와 네겐트로피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뜻합니다. 물리학의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의 법칙)은, ‘닫힌계에서, 엔트로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한다. (또는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따뜻한 커피가 식는 것, 정리된 방이 점점 어질러지는 것, 몸이 늙고 병드는 것,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 이 모든 것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입니다. 

네겐트로피라는 말은 물리학의 정식 용어는 아니지만, 정보이론이나 생명과학, 철학적 사유에서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엔트로피의 반대 개념(negative entropy, 네거티프+엔트로피= 네겐트로피)으로, 질서의 증가, 의미의 생성, 생명의 유지, 정보의 축적 등 무질서에서 질서를 창출하거나 유지하려는 힘을 의미합니다. 

 

생명 – 네겐트로피적, 그러나 엔트로피
“생명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끊임없이 네겐트로피(역.逆 엔트로피)를 취함으로써 살아남는다.”
어윈 슈뢰딩거가, 자신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한 말입니다. 

생명체는 닫힌계가 아니라 열린계로 존재하기에, 외부 에너지를 받아들이며 일시적 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분명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는 능동적 에너지 흐름이지만, 결국 생물학적 한계를 지닌 존재로서 엔트로피의 지배를 받습니다. 숨을 쉬고, 성장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하고 기억하는 모든 활동은 네겐트로피적 현상이지만, 결국은 쇠퇴와 죽음이라는 엔트로피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처럼 생명은 네겐트로피적이지만 동시에 본질적으로 엔트로피적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DNA(유전 정보)의 전달이나 진화적 발전에서 보듯이, 나아가 인간의 영원에 대한 소망과 초월을 향한 내적 지향성에서 볼 수 있듯이, 생명은 분명 네겐트로피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닫힌계를 여는 은총
우주라는 거대한 닫힌계 안에서, 모든 피조물은 결국 엔트로피의 흐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 흐름의 한계 밖으로 열려 있는 ‘초월적 창(窓)’이 됩니다. 하느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시면서도 세상 한복판에 계신 분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질서, 곧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은총, 창조 – 성부의 네겐트로피
하느님께서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빛이 생겨라” 말씀하신 순간, 무질서는 질서로 변했습니다. 닫힌계에 열린 첫 창이자, 존재 전체를 향한 가장 거대한 우주적 역 엔트로피입니다. 

 

은총, 구원 – 성자의 네겐트로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십자가는 죽음, 절망, 무질서의 정점에서 새로운 생명과 질서를 창조해 냈습니다. 성자의 십자가 죽음은 닫힌계 안으로 흘러든 하느님의 결정적 네겐트로피, 가장 큰 무질서를 가장 깊은 질서의 길로 바꾸신 신비적 사건입니다.

 

성령과 교회 – 열린계로 전환된 삶
세례는 옛 인간의 소멸과 새 피조물의 탄생(2코 5,17)이며, 성찬례는 일상의 무질서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써 재질서화하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교회는 “이미”이자 “아직”인 하느님 나라의 씨앗으로, 세상 엔트로피 속에 심어진 네겐트로피의 표지가 됩니다.

 

신앙인의 응답 – 저항과 열림
세상적 흐름에 편승하려는 유혹에 저항하며 하느님뜻에 일치시키려는 내적 지향으로, 우리는 닫힌 삶을 열린 삶으로 변환하며, 작은 네겐트로피를 일상에 구현합니다.

 

영원한 생명 – 최종적 질서의 선물
영원한 생명은 단순한 수명 연장이 아니라, 닫힌계를 초월해 계시며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루카 17,21 참조). 그 나라는 지금 여기서 시작되지만 종말 때 충만해집니다. 
희년의 기쁨은 바로 이 ‘닫힌계를 여는 은총’, 엔트로피를 넘어서는 최종 질서를 미리 맛보는 사건입니다. 희망은 단순한 기대가 아닌, 기존의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 새로운 창조와 질서를 이룩하는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생명은 순간의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열림 안에서 영원한 질서를 선물 받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무질서를 극복하려는 인간 노력의 종착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시는 결정적 네겐트로피, 새 창조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이라는 희망의 외침으로 그 선물을 향해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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