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또 다른 현실은, 우리 개개인의 삶의 끝에 그리고 역사의 끝에 있을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 우리는 의식적으로 깨어 있으면서, 우리의 삶이 심판받게 될 그 순간을 위하여 실제로 우리 자신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준비는 반드시 희망이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희망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하는 향주덕입니다. 사랑이신(1요한 4,8.16 참조) 하느님의 심판은 틀림없이 사랑에 기초할 것입니다. …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심판을 받을 때에는 자비를 기대하라”(지혜 12,22). -희년 칙서 22항
인간적 한계, 하느님을 통한 초월
EBS 라디오에서 저명한 문학가와 인문학자들의 대담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가야 할 길에 대해 훌륭한 통찰을 제시하는 그들조차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서 깊은 절망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바로 그 절망의 자리가 신앙인에게는 희망의 시작점이 됩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께 의탁하며 기도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계획과 능력을 초월하시는 분, 그분이야말로 우리 희망의 유일한 근거가 되십니다. 기도로써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가진 가장 큰 지혜입니다.
하느님 스타일 – 기다림과 성실함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9).
하느님의 희망은 인간의 조급함 속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빠른 성공이 아니라, 약속에 대한 성실함과 우리를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주시는 자비 안에서 드러납니다. 때로 그 기다림이 더딤과 지연처럼 느껴질지라도, 그것은 우리를 위한 은총의 시간입니다.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닌 그런 하느님의 스타일을 믿고 살아가는 태도, 그것이 희망입니다.
심판 -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회복
우리는 흔히 ‘심판’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심판은 당신과의 온전한 만남으로 이끄는 사랑의 과정입니다. 하느님은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사랑으로 우리를 온전히 새롭게 빚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로마 3장 참조).
따라서 심판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절망의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희망의 사건,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무너진 질서를 바로 세우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회복의 시간입니다.
희년의 초대
희년은 우리 각자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희망하느냐?”
우리의 희망은 세상의 힘과 덧없는 성공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어야 합니다. 그분의 스타일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그분의 심판을 사랑의 완성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자유와 기쁨을 얻게 됩니다.
하느님이, 희망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