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뜨락
2022.02.17 10:43

믿음으로 빚은 마음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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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순화 베로니카 시인

코로나19의 여파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확진 학생이 발생하면서 그와 접촉했던 모든 사람들이 전수 검사와 자가 격리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교육청과 보건소의 업무별 담당자마다 똑같은 상황 보고를 여러 차례 해야 했고, 많은 학부모의 민원에 대처하느라 참 고단한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휴대폰 하나밖에 없는 시설에 갑자기 격리되어 원격 수업까지 진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갔다. 모두가 처음 겪는 낯선 상황에 당황만 할 뿐 별다른 지원조차 없었기에, 곳곳에 격리된 많은 학생들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막막함에 눈물만이 맴돌았다. 그때 불현듯 코로나로 슬픔과 고통에 빠진 세상을 위해 교황님께서 전 세계의 가톨릭신자들과 미사를 집전하셨던 장면이 떠올랐다.


“며칠 전부터 계속 저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 겁내지 말라 하셨지만 저희는 믿음이 약하고, 저희는 무섭습니다.”라는 교황님 말씀이 지친 내 마음을 공감해 주듯 나지막이 들려왔다. 그리고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두려워하지 말라.”의 말씀이 쓰러진 나를 일으켰다. 어쩌면 내가 겪는 어려움을 이미 주님은 다 헤아리고 계셨을 텐데, 갑작스런 거센 바람에 막막하고 두려웠던 것 같다. 분명 이 시련은 내가 감당할 수 있기에 주어진 것이며, 당신께서 끝까지 나와 함께해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두려움과 죄책감에 힘들어할 학생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며 하나씩 실천해 보았다. 


가장 먼저 주변에서 떠도는 소문에 학생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온라인 채팅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며 개별 상담을 하였다. 또 각자의 격리 공간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공감과 위로의 길을 만들어갔다. 두루마리 휴지에다가 학생들에게 위안을 건네는 말을 길게 써서 촬영한 영상을 보내자, 학생들도 각자 방 안에 있는 각종 학용품을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서로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을 전하였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확진 학생의 완치 소식과 함께 전원 모두 일상으로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다.


참 기뻤고 감사했다.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당신의 계획이 내 마음의 그릇을 더 단단하게 빚게 하신 것 같았다. 갑자기 찾아온 생활의 변화가 낯설고 두려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면의 약한 부분을 더 깊이 돌아볼 수 있었고 마음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의 상황으로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다시 찾아올 수 있겠지만, 이제는 길을 잃어버릴 때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다. 여행에서 길을 잃고 다시 돌아가는 길은 그 장소를 더 잘 알게 하는 것처럼 당신과 함께 믿음으로 빚었던 시간의 기억들은, 이제 내 마음의 그릇에 넉넉하게 자리 잡아 불안한 삶을 차곡차곡 담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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