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위원을 하게 된 지 참 많은 시간이 지났다. 조정은 판사가 내용을 보고 판결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조정위원이 조정으로 해결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하에 내린 사건들이다. 여기에서 해결되는 사건은 추후 항소도 불가하고 판사가 내린 판결과 효력이 같아 이른 시일 내에 깔끔하게 끝나는 이점이 있다. 요즘은 판사에게만 의존해 불안하게 기다리기보다 내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되는 조정제도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동장군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꿈쩍 않는 사건은 판사나 검사가 직접 맡고, 조정으로 분류되는 사건은 대부분 ‘인간성’이 받아들여지는 것들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언제쯤 물러서고 나아가야 하는지가 기본적으로는 세팅이 되어 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정선, 이것은 배우고 안 배우고 나이가 많고 적고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상관없이 모든 이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이것이 짓밟히거나 뭉개지면 인간은 못 견딘다. 조정위원은 이것을 잘 살펴 서로를 살려내는 게 주된 역할이다. 양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양보는 서로가 좋은 관계일 때 수용이 가능하지,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아 공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결국은 양보함으로써 일이 마무리되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주장해서도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지엽적으로 흘러 본질을 벗어나 처음으로 돌아가 버린다. 여기서 본질은 타협이다. 타협의 추가 온갖 잡동사니에 묻혀 파묻히거나 휘어지지 않게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말 저말에 기울어서도 안 되고 잘못된 말을 방치하여서도 안 된다.
말속에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살짝 편집하였거나 잘못 들었거나 잘못 보았거나 잘못 기억한 것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증명되지 않는 상상은 금물이다. 거짓말이냐 아니냐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논리정연하게 앞뒤가 척척 맞으면 참말 같고, 횡설수설하며 앞뒤가 안 맞으면 거짓말 같다. 나에게 불리하면 거짓말이고 달짝지근하면 참말 같다. 그래도 지나간다. 굳이 밝혀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럴 때는 누가 더 피해를 보았고 누가 더 득을 보았느냐만 본다. 울분을 토하며 억울함을 호소해도 잃은 게 없으면 그가 잘못되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분간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들에게 시급한 것은 타협이다. 타협은 기술이 아니라 정직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정직하여지고자 하는 욕망이 거짓말을 하고자 하는 욕망보다 더 강하다. 미워하는 욕망보다 용서하고픈 욕망이 더 두텁다. 이것이 묻혀버릴 때 끈을 놓아버린다. 얼마나 사무친 누명인가, 그래서 맞다고 한다. 둘 다 맞다고 한다. 설령 이것이 부정을 부추긴다 해도 나는 네 편이다. 토닥토닥 토닥거림으로 사람을 살려낸다.
내 안에 있는 사랑으로 내가 무너질 때가 있다. 어리석고 바보 같은 후회 중에는 사랑이라고 확신한 것들이 많다. 그래도 주님의 뜻을 바라보며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