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나는 알고 있다고 말을 하였다. 그런데, 늘 내 앞에서 나를 보고 있는 하 느님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보기가 더 쉬운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느님은 나와 마주하고 있는 생명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다. 나를 가장 잘 볼 수 있 는 곳에서.
아니, 내가 하느님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계셨던 것이다. 당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나와 마주하는 그 생명을, 내가 조금 더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셨고 내가 그 생명 안에 머무르기 를 원하셨던 것이다.
서로가 매일 마주하는 생명을 바라보고 머물면서 함께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으며, 그저 그렇게 말을 하고 있 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과의 만남에서 ‘무엇을 찾느냐?’고 물으신 뒤 ‘와서 보아라’라고 하시며 그들 과 함께 하룻밤을 묵으시는 곳을 보고 제자들은 그분이 메시아임을 고백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 다.(요한 1,38-41 참조)
또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예수님께서 거기에서 이틀을 더 머 무르시며 함께 한 시간을 보내셨을 때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고 알게 되었다.(요한 4,40-41 참조)
이렇게 함께 묵기도 하고 머무르면서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처럼, 내 앞에 있는 생명을 알기 위해서는 머무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마주한 생명과 머무름의 시간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보니, 생명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였다. 또 그 생명 안에서 소리치는 아픔을, 도와달라는 손짓을 보지 못하였다.
나를 향해 웃음 짓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였을 하느님을 보지 못하였다.
매일 바라보면서도 들리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다. 생명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그저 밖으로 보이 는 것만 보았고 들리는 것만 들었던 것이다. 더더욱 하느님을 보지 못하였다.
그 생명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오늘도 성찬 전례 안에서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제는 마주한 생명과 함께하시는 하느님 안에 머물며 보려한다, 들으려한다. 그리고 지그시 사랑의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느님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한다.
마주하는 생명 안에서 사랑으로 부르고 계시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오늘은 제13회 교구 성경잔치에 참여하는 많은 교구민들을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설레고 기 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