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아내를 잃었습니다. 지금까지 7개월, 신앙에 닿는 시로서만 심회를 적어왔습니다. 100일 미사를 드리는 동안의 그 과정에서 씌어진 시 몇 편 줄여 올려 이로써 구비구비 슬픈 표정을 짓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대 어디 있는가
“그대 어디 있는가, 하늘로 올라/
예수님 성모님 계시는 곳에 있으리라/
기도하던 대로 원하던 자리 그곳에 있으리라//
그러나 마지막 아픔의 골짜기를 거쳐 갔으므로/
남아 있는 자들은/
아픔의 벼랑이나 굽이치는 물굽이를 벗어났는가/
걱정 중에 걱정으로 있는데//
영결미사를 주례해 주신 루치오 신부님/
말씀하시기를/
헬레나 선생은 유택이거나 묘소이거나/
벼랑 같은/
비바람 치는 곳에 있지 않다고, 우리들 따뜻한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십니다...... 나는 아직 병상 곁에서 1년여 보내면서/
여태 보내지 못하고 있어서/
나는 아침약 점심약 저녁약 시간대로 챙기고 있는 듯 아닌 듯/
그 약봉지 수북이 남아 있어서......”
거실, 아내와의 보금자리
“아내가 가고/
그 인생도 갔다//
상봉한주 47평형 아파트/
아내가 원해서 입주해 온 지 32년/
못 하나 만질 줄 모르는 남편과 함께/
리모델링까지 하고/
교수이자 시인인 그 이름이 호주였다//
빈 자리가 썰렁하다/
TV가 없으면 적막강산이다//
오늘은 스승의 날 하루 전/
대학에서 명예교수의 날이라며 오전 11시/
컨벤션센터로 나오라 한다//
나가볼까 나가서 그리운 얼굴들에/
그리운 한때 만들고 올까/
그리움은 아내 한 사람으로 가득하고 저녁이면/
아내를 위한 백일미사가 기다린다//
가슴이 있는가 설레기 시작한다”
김,금,자 선생
“원무과 수납계에서/
환자분 성함 화면에 적어 주세요/
네, 김 금 자 또박또박 필기체로 쓴다//
은행 창구에서 손님 성함 불러 주세요/
네 김, 금, 자 또록또록 말한다/
옆에서 듣는 사람이나 보호자로서 듣는 나는/
국어선생이 국어를 읽듯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교회 교우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흑판에 김 금 자 헬레나라고 쓴다/
제7강 ‘사랑의 공동체’ 제목을 쓸 때도 공 동 체/
세 글자에 이름 이상으로 힘을 주어 쓴다/
이때 수강자들도 국어선생이 국어를 가르치듯이/
가르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는 때때로 나랏말씀이 듕국과는 달라 서로/
통하지 아니할 새/
이를 불쌍히 여겨 내 새로이 스물여덟 자를 맹그노니/
사람마다 해여 편하게 쓰게 함이라/
대왕의 뜻이 이렇다 함을 자주 뇌이며 /
대왕이 이때는 사람의 아들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아직도 몇 편은 더 소개하고 싶지만 마지막 고통이 밀려올 때도 선종, 선종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한 그 써늘한 순간이 떠올라 글판을 접을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