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는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이다.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산 활동에 대한 근시안적 접근으로 지구의 자원이 착취되고 있다. 숲과 삼림 지대의 손실은 생물종들의 감소로 이어진다. 생물종들은 식량만이 아니라 질병 치료와 여러 용도로 이용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미래 자원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생물종들은 앞으로 인간의 필요에 도움이 되고 환경 문제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원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대양은 우리 지구의 대부분의 물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엄청난 수의 다양한 생명체도 품고 있다. 강과 호수와 바다와 대양에 살고 있는 해양 생물은 세계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으나, 특정 어류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오는 무절제한 포획으로 위협받고 있다. 해마다 수천 종의 동물과 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이것들은 영원히 사라져 버려서 우리가 전혀 모르게 되고, 우리 후손들은 전혀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간 활동과 관련된 이유로 매우 많은 생물종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생태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균류, 해조류, 벌레 무리, 파충류, 그리고 셀 수 없이 다양한 미생물들이 필요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인간의 관여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이따금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합성 농약 사용으로 사라진 많은 새들과 곤충들은 사실 농사에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다.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앞을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쉽고 빠른 금전적 이익만을 얻으려고 할 때, 그 누구도 생태계 보존에 참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생물종이 소멸되거나 심각한 해를 입게 되면 그에 따른 손실은 막대하다. 그래서 환경 훼손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현재와 미래의 인류에게 떠넘긴 채로 개인적 이익만을 얻으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가장 심각한 불의 앞에 침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피조물은 우리 자신의 기쁨을 위하여 지배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특히 일부 소수의 자산도 아니다. 피조물은 선물이다. 피조물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깊은 존중과 감사의 마음으로 피조물을 돌보고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하여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피조물의 보호자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것들을 보호해야 한다. 피조물은 우리가 잘 사용하도록 우리를 위하여 존재한다. 우리는 피조물을 착취할 것이 아니라 보호해야 한다.
이제 공동의 집을 보호하는 것은 경제적 도전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근본적이고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세상은 사랑이신 하느님에게서 생겨났고, 하느님께서는 세상 안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며 우리가 이러한 당신의 존재 방식에 동참하도록 부르고 계신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처럼 ‘살’ 수 있기 위하여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 안에 우주가 응축된 소우주이지만 인격적인 하느님께서 직접 그의 얼굴에 불어 넣어 주신 숨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인간 안에서만, 세상은 본연의 내밀한 성사성에 부응할 수 있다. 곧 인간만이 세상이 선물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선물은 언제나 인격적인 실재이다. 선물 안에는 그 선물을 준 사람이 어느 모로든 담겨 있다. 또한 선물은 받는 이에게, 그 선물을 보면서 그것을 준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선물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리고 그의 삶을 함께하고자 하는 친교의 표시이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12.25) 하느님의 눈에 우리 인간은 가 장 아름답고 위대하고 좋은 피조물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보여준 대로 모든 피조물, 창조된 세상의 아름다움을 매일매일 누리며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이해하고 구원으로 나아간다. 아름다움을 누린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창조물 하나하나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모든 것이 우리의 보호에 맡겨져 있고, 우리 모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자연이 주는 열매들을 잘 먹고 사용하면서 하느님 선물의 보호자가 되자.
코너 ‘지구를 위해 하다’는 이번달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고생해주신 강협섭 미카엘 신부님께 마음 속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