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또르르 맑은 목소리를 담아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뭐 드릴 게 있어예, 집 앞으로 좀 내려 오시이소.” 주말 이른 시간에 그녀가 웬일인가 싶어 슬리퍼를 끌고 상가 앞에 도착하니 저만치서 화분을 들고 와 나에게 덥석 안겨준다. 순식간의 일이라 일단 받고 보았다. 이런 극진한 대우를 받는 것도 처음이고, 분재 선물도 처음이라, 민망하여 돌아가는 그녀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또 흔들어 주었다.
분재라는 놈이 우리 집에 온 것도 처음인데 그 분재에서 흐르는 은은한 국화 향이 얹히어 한동안 행복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바위틈에 자생하는 꿋꿋한 낙락장송은 아닐지라도 낭창하게 늘어지는 국화 가지가 제법 운치 있어 눈 호강을 하는 중이다. 하나씩 피고 지는 놈들을 손끝으로 끊어 낼 때 은근하고 친숙하게 뿜어내는 향기는 우울한 마음도 살려내는 묘미가 있다.
야무진 그녀가 분재를 안겨주면서, 꽃망울이 피고 질 때 시든 꽃을 똑똑 떼어내면 오래 꽃을 볼 수 있다는 친절한 안내도 곁들여 주었다. 또 가위를 가지러 가는 게 귀찮아 엄지 검지를 이용해 똑똑 끊었더니 손끝에 향이 아주 오래 묻어 있었다. 마산 국화 축제 시즌인 9월 중순 즈음에 우리 집에 온 녀석은 해가 바뀌어 1월 하순인데도 아직 싱싱하다. 묵은 줄기에서 꽃잎도 보기 좋게 나와 화전을 부칠 정도의 크기만큼 자라나 있다. 화초 키우기엔 젬병인 내게 웬일인가? 화분 길이가 길고 가지가 늘어져 있어 물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긴 생수 병을 이용해 아침마다 물을 주었더니 싱싱함을 유지하고, 물을 좋아하여 줄 때마다 포만감을 느낀다. 운 좋게 생육 조건이 우리 집 거실 온도와 잘 맞았을까? 분재 선물 덕분에 간만에 짧은 사색을 즐기며 그녀의 고마운 마음 씀씀이도 느끼게 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에서 반짝이며 부서지는 은빛 수면과 테이블 위 국화를 번갈아 쳐다본다.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이 순간이 내 인생에도 예정되어 있었던 시간일까?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아침이면 일터로 바삐 출근 하던 수많은 날들.... 관망하는 시간, 거리를 두고 살펴보는 시각적 여유, 혼자만의 공간이 부족한 탓이었을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이런 여유 있는 삶도 가능한 거였구나!
한가로이 분재를 쳐다보며 은빛 바다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내가 바보처럼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태껏 복음 속의 마르타처럼 살아왔다면 이제부터 마리아처럼 읽고 묵상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이제는 채우지만 말고 여백을 좀 남기고 바라보자. 국화 분재의 묵은 줄기에서 새 꽃잎이 계속 올라오듯 치열하게 신앙의 진지를 지켜왔던 친정어머니 고 김옥지 세쿤다 여사의 복음적 인내가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