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내게 우주를 한마디로 정의해 보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텅 빈 공간', 다른 말로는 진공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광활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볼 때, 그 별들 사이에 얼마나 큰 '텅 빈 공간'이 존재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태양계도 마찬가지로 태양에서 해왕성까지의 공간 속에는 행성과 혜성, 행성들의 위성, 그리고 미미한 먼지들만 있을 뿐, 나머지는 차갑고 고요한 진공이다. 이 ‘텅 빈 공간’이야말로 생명을 품고 있는 지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만약 우주가 진공이 아니었다면, 태양열이 지구로 직접 전달되어 지구행성은 수백도의 불지옥이 되었을 것이므로 '창백한 푸른점'은 붉은점이 되어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을 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텅 빈 공간’ 덕분에 우리는 삶을 누리고 있다. 이 묵상을 통해 나를 돌아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내 몸을 이루는 수많은 세포와 세포 속의 원자와 그 원자 내부의 공간도 결국 텅 비어 있다. 핵과 전자 사이의 공간은 마치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축구장에 손톱만한 구슬 하나만 놓여 있는 것이니, 내 몸도 본질적으로 텅 비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텅 빈 공간’ 속에서 나는 세상 과 부대끼면서 살아 숨쉬고, 생각하며, 사랑한다.
사순절은 내 삶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텅 빈 공간을 두려워하거나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그 비움 속에 숨겨진 충만함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인간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살면서 더 많은 재물, 더 높은 지위, 더 큰 성공으로 이 빈자리를 채우려 애쓰지만, 아무리 채우려 해도 이 비움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이는 어쩌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남겨두신 공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안에 남겨진 이 빈 공간은 하느님을 위한 자리이므로 억지로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면, 오히려 더 공허해질 뿐이다. 그러나 그 자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우면, 우리는 그제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텅 빈 충만’이라는 역설은 바 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나의 빈 공간은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이고, 그 사랑으로 인해 나는 더 풍요로워진다.
우주와 내 몸이 텅 비어 있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우주의 별 1028개와 내 몸의 원자 1028개가 닮아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일까? 하느님께서 별 하나에서 원자 하나를 떼어 모아 인간을 빚으셨다는 생각은 나의 단순한 억측이 아니라, 우리 안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신비를 드러내는 진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작은 우주이며, 하느님의 작품이다. 사순절 동안 나는 내 안의 ‘텅 빈 공 간’을 다시 바라본다. 그곳에 하느님의 사랑과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본다.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을 것이지만, 더 채우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대신 이 공간을 그대로 두고, 그것을 ‘텅 빈 충만’이라 부르고 싶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워진 이 공간은 비어 있음에도 충만하다. 사순절은 바로 이 비움과 충만함의 조화를 배우는 시간이길 바래본다.
텅 빈 공간 속에서 충만한 사랑으로 채우시는 하느님! 그 사랑에 감사하며, 저의 남은 빈 공간을 당신께 내어드립니다. 그러니 저의 그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워주소서. 그리고 그 채움 속에서 저 또한 당신의 사랑을 세상에 나누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