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면 아카시아 꽃은 어김없이 피고 그 향기는 온 세상을 그리움으로 물들인다. 어렴풋이 피어나는 유년의 뜰과 가난했던 젊은 날의 서러운 추억들이 서걱인다. 5월은 성모님의 계절이다. 또한 그 중심에는 스승의 날이 있다.
지나온 삶 속에서 배움과 가르침의 역정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나의 교직생활도 40여년을 넘어선다. 그동안 내가 배운 선생님들은 백여 분 이상 되고, 가르친 학생들은 수만 명도 더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선생님이 나의 스승이 될 수는 없고, 그 많은 학생들이 나의 제자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사제 간의 인연은 각자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제도가 만들어 준 물리적인 만남으로 시작되지만 서로에게 각별한 존경심과 애정이 쌓여질 때 맺어지게 된다. 제도적으로 배우고 가르쳤다고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는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라야 하며 스승은 그 제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가 스승으로 모시는 분은 한두 분 정도다. 초등학교 시절, 그 척박한 산골에 초인처럼 오신 20대 총각 선생님이 계신다. 60년대의 그곳은 분명, 문명의 혜택이 차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고립된 세상이었다. 전교생 60여 명에 복식학급이었으니 무엇보다도 중학교 입학시험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 년에 겨우 한 명 정도 합격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나의 5학년 담임선생님으로 오셔 졸업할 때까지 자식처럼 학업을 돌보아 주셨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결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언제나 내 마음속의 커다란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계신다.
또 한 분의 스승은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끌어 주셨다. 자신감을 잃고 문학을 포기한 나를 부르셔 문인의 길을 걷게 하셨다. 나는 청년시절 작가를 꿈꾸었지만 주변에 그 누구도 나의 문학적 역량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한 환경에서 오직 선생님만이 나의 글이야말로 미래를 열어갈 열정이 밴 작품이라며 격려해 주셨다. 나는 살아갈수록 이런 선생님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내게 보내주신 은인이라는 사실임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 하느님과 스승님을 모시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
나의 제자는 얼마쯤이나 될까. 부끄럽지만 가끔 궁금할 때도 있다. 그래도 평생을 가르치는 일만 했는데, 나름대로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쏟았는데, 하고 위안을 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인품은 넉넉지 못하고, 학문과 문학의 깊이 또한 출중치 못하니 따르는 제자가 있기는 하겠는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어찌하랴. 선택은 나의 몫이 아니니 말이다.
성모성월을 보낸 6월의 푸른 하늘 사이로 아련한 그리움의 꽃향기가 코끝을 울컥 스치고 지나간다.


